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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VDI 사업에 ‘국산SW 배제’ 논란…정부, 공공시장 외산종속 방치?

권하영 기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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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정부가 국산 소프트웨어(SW)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공공 SW 시장에선 여전히 외산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국산업체들을 배제시키고 있는 사례가 확인된다. 우리나라 공공 SW의 외산 종속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의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축산물 등급제·이력제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인 축산물품질평가원(이하 평가원)은 최근 ‘지원 논리적망분리 사업’을 발주하고 제안요청서(RFP)를 제출했다. 이 사업은 원내 지원업무에 대해 인터넷망과 업무망을 분리하면서 원격근무가 가능하도록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를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 사업에 참여 가능한 사업자는 사실상 외산 VDI 업체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원은 이번 사업의 요구사항 중 하나로 “데스크톱 가상화 솔루션과 하이퍼바이저(가상머신을 생성·구동하는 SW)는 ‘동일 제조사’로 구성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를 충족하는 업체가 현재 VM웨어와 시트릭스밖에 없다.

한마디로 국산업체들은 아예 입찰에 참여할 길이 없는 셈이다. 국내 VDI 업체들은 일부 마이크로소프트(MS) 하이퍼바이저를 사용하는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오픈소스 하이퍼바이저를 기반으로 개발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평가원이 해당 조건을 요구하는 표면적 이유는 ‘오류 최소화와 호환성을 위해’서지만 업계에선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시중의 서비스 구성을 보면 MS 애저 위에 타 제조사 VDI 솔루션이 무리 없이 연동돼 잘 돌아가는 것처럼, 이기종 환경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외산업체의 경우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을 때 국내 환경에 최적화돼 있지 않아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부분도 있어, 안정성 측면에서 반드시 외산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지난 2021년 12월 발생한 아파치 로그4j 보안 취약점 발견 당시, 국내 VDI 솔루션을 도입했던 공공기관은 조치 완료까지 사흘이 걸렸지만 외산 도입 기관은 패치 버전이 나오기까지 넉달이 걸린 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 오류가 많이 발생하는 영역 중 하나가 관리자포털과 사용자뷰어인데, 외산 솔루션은 이 기능이 취약해 국내 파트너사가 별도로 개발한 포털과 뷰어를 공공기관이 따로 유료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최근 발주한 ‘지원 논리적망분리 사업’ 제안요청서(RFP) 내용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최근 발주한 ‘지원 논리적망분리 사업’ 제안요청서(RFP) 내용

공공기관이 공공 SW 사업에서 외산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국산업체들을 배제하는 사례는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우에도 올해 실시한 VDI 구축 사업 요건을 ‘하이퍼바이저 원천기술을 보유한 제조사’로 한정함으로써, 사실상 VM웨어와 시트릭스 두 곳만 입찰이 가능하도록 해 국산업체들의 불만을 산 바 있다.

또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초기에는 외산 솔루션을 도입하는 게 일반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국산 솔루션의 입지가 많이 높아졌다”며 “그럼에도 그냥 외산 제품을 쓰는 게 가장 쉽다는 생각이 일부 발주기관들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국내 VDI 솔루션 대부분이 오픈소스 기반이라는 점에서 공공기관이 ‘호환성’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오픈소스를 기피하는 행위 역시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작 정부 차원에서는 ‘공개SW 도입 가이드’를 마련하고 SW진흥법 개정을 통해 공공 사업에서의 오픈소스 활용을 독려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기관들의 은근한 국산·오픈소스 SW 배제 행태가 계속될 경우, 그동안 국산 SW 산업 활성화를 강조해온 정부 정책 기조가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현행 기획재정부 계약예규상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이 있긴 하지만, 기술적 부분에 대해선 금지 기준이 광범위하거나 모호해 혼란이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주무부처들에선 일단 해당 사안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계약예규 위반사항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보면 국산과 외산 불문 공정한 절차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을 보면 특정 규격이나 모델을 지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도가 있는데, 개별 케이스에 대해 규정 위반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며 “국내 SW 산업 활성화 관점에서 대체가능한 국산 SW가 있다면 적극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내 공공 SW 시장은 이미 외산 솔루션에 대한 의존도가 심한 상태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 공공부문 정보자원 현황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공공부문 정보시스템에서 SW(OS, DBMS, WEB/WAS, 백업, 정보보호 등) 부문 외산업체 비중은 57.71%에 이르러 국산업체(42.29%)보다 많다. 공공 SW 국산화 비율은 전년보다 5%포인트 감소해 외산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축산물품질평가원은 <디지털데일리> 보도 이후 8월29일자로 정정공고를 냈다.

평가원 측은 “동일 제조사 구성 요건은 원천기술 제조사로 제한해 특정업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며 오픈소스 기반으로 제작된 국산 제품을 포함해 호환 가능한 제품이면 응찰 가능하다”며 “하지만 조달공고 내용의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자 동일 제조사 제품으로 구성하도록 명시한 부분을 호환 가능한 제품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정정했다”고 전해 왔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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