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정책

[기업법률리그 56]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의 판단기준

원준성
원준성 변호사. [ⓒ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 법무법인 민후]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저작물의 동의 없는 이용이 언제나 저작권 침해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법은 재판 등에서의 복제, 학교교육 목적 등에의 이용, 시사보도를 위한 이용, 시험문제를 위한 복제 등 저작재산권의 제한에 관하여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저작재산권이 제한되어야 할 모든 경우를 유형화하여 규정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저작권법은 제35조의5에서 저작재산권 제한에 관한 일반적 성격의 규정으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규정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35조의5 제1항은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는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그 판단에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규정이니만큼 요건이 추상적이므로, 그 구체적 기준은 누적된 판례를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그동안 저작권법 제35조의5 요건의 구체적 의미에 관해 상세하게 설시한 판례는 없었는데, 최근 그 기준을 비교적 자세히 판시한 판례가 있어 그 판례를 소개한다.

본 판례 사안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를 그 홈페이지에 시험 종료 후에도 지속하여 공개하고 누구든지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해 둔 행위가, 그 문제지에 인용된 저작물들의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지가 문제 된 사안이다.

제1심의 경우 위와 같은 행위는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 및 국가교육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작물이 인용되었고, 균등한 학습기회 보장과 시험의 투명한 관리라는 공익이 인정되며, 인용된 부분의 양적·질적 비중이 크지 않고, 저작물의 본래 목적과 달리 수험생의 학습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용되어 수요를 대체할 가능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가 그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제2심과 대법원은 달리 보았다. 당초의 목적인 평가를 위한 시험문제에의 인용을 넘어, 시험의 전 과정이 종료된 후에도 시험 응시자 외 불특정 다수인이 언제든지 원하면 이를 내려받을 수 있는 상태로 게시하여 두는 행위는 정당한 이용 범위를 초과한 것이라는 취지이다. 이러한 게시행위까지 시험문제를 위한 복제(저작권법 제32조)라거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저작권법 제28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법원은 이러한 게시행위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도 해당할 수 없다는 점을 판시하면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의 요건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상세히 설시하였다. 즉 대법원은 『'이용의 목적 및 성격(제1호)'에 관하여는 그 이용이 원저작물을 단순히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표현, 의미, 메시지 등을 나타내도록 변형한 것인지, 원저작물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목적과 성격을 가지는지, 원저작물을 변형한 정도가 2차적저작물 작성에 필요한 수준보다 더 높은 정도에 이르렀는지, 공익적이거나 비영리적인 이용인지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제2호)'에 관하여는 원저작물이 사실적 ·정보적 성격을 가진 저작물인지, 공표되거나 발행된 저작물인지 등이 고려되고,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제3호)'에 관하여는 원저작물 전체를 기준으로 그 이용된 부분이 차지하는 양적인 비중이나 질적인 중요성이 낮은지, 이용자가 반드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용한 것인지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제4호)'에 관하여는 저작물의 이용이 원저작물 또는 원저작물의 2차적저작물에 대한 현재 시장의 수요나 장래 개발될 합리적인 개연성이 있는 통상적인 시장의 수요를 대체하거나 그 시장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없거나 적은지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여러 SNS의 사용이 널리 일반화되며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게시물에 여러 유형으로 인용하는 사례가 매우 많은데, 그러한 경우 저작권침해 판단에 항상 고려되는 것이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인지 여부이다. 그동안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판시가 없어 판단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번 대법원 판시를 통해 그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원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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