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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국감 증인명단으로 본 IT 사각지대

권하영 기자

제22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국회의사당 모습.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2024년도 국정감사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각종 진흥과 규제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정보기술(IT) 산업계도 올해 국감을 주목하고 있다. 다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국감도 정책 현안보단 정쟁 이슈에 매몰될 가능성이 커서다.

특히 이번 국감에선 최고경영자급 기업인을 무더기로 소환해 시작도 전에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정감사를 명분으로 한 국회의 기업인 ‘망신주기’가 어김없이 재연될 조짐이다. 호통이나 듣고 가면 모를까, 병풍 취급받다 돌아가는 증인도 적잖을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이번에 역대 최대 규모의 증인 108명·참고인 53명을 채택했다. 이 증인들이 모두 들어앉을 공간조차 없어 전례 없는 혼란이 예상된다. 과방위 내에서도 무분별한 증인 신청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증인을 얼마나 부르든 심도 있는 정책 논의가 가능하다면 이해는 되겠지만, 이번 과방위 국감은 공영방송을 둘러싼 여야 정쟁이 블랙홀처럼 이슈를 빨아들이는 역대급 ‘방송 국감’이 될 것이다. 이 가운데 IT 현안은 자연히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IT를 다루게 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감은 ‘연구개발 예산 축소’ ‘제4이통 실패’ 등 정부 책임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주된 이슈다. 또한 KT의 최대주주 변경과 공익성 심사 논의를 위해 증인으로 채택된 김영섭 KT 대표와 김승수 현대자동차 부사장,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을 향한 야당의 의혹제기가 전망된다.

국감 단골소재인 ‘망 무임승차’ ‘인앱결제 규제’ ‘해외플랫폼 국내대리인 지정’ 관련해서도 글로벌 빅테크의 형식적인 한국지사 임원들이 증인으로 호출돼 맹탕 답변이 예상된다. IT 업계 최대 기술 화두인 인공지능(AI) 관련해서는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이노베이션센터장 정도가 관련 증인으로 소환돼 있다.

지난해 11월 대규모 공공서비스 중단 사태를 부른 행정전산망 장애와 이로 인한 공공 소프트웨어(SW) 시장 문제점은 적어도 과방위 내에선 ‘아웃 오브 안중’이다. 과방위 국감은 대기업의 공공SW 진입규제 완화 관련 첨예한 대-중소기업간 논쟁을 다룰 책임이 있지만, 이번 증인 명단에 포함된 관계자는 전무하다.

행정망 장애 사태를 직접 소관하는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가 그나마 행정안전부 국감에서 문책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란 기대가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김영섭 KT 대표 외에는 소환된 증인이 없는 상태다. KT는 행정망 사태의 직접적 원인을 야기한 기업도 아니어서 증인 선정에 의문이 뒤따르는 중이다.

행안위 역시 증인 명단을 보면 정책 국감보단 정쟁 국감이 될 확률이 높다. ‘대통령 관저 불법증축 의혹’ ‘대통령실 선거개입 의혹’ 등 야당이 제기한 굵직한 이슈 관련 증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나마 여야 불문 엄중 처단 목소리가 높은 딥페이크 및 디지털성범죄 실태 관련 증인이 1명 채택돼 있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할 전망이다.

국감은 정부기관이 입법기관의 정책 검증을 받는 자리인 만큼, 여기선 ‘검토해보겠다’는 단순한 약속도 반드시 후속조치가 실행된다. 정책적 관심이 절실한 IT 산업에는 중요한 기회다. 하지만 여야의 정치적 대립 또는 기업인 망신주기에 밀려 후순위가 된 IT 현안이 한둘이었나. 이번 국감도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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