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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XL 메모리' 연말 출시 임박했지만…핵심 'CXL 3.0' 개발 '감감' [소부장반차장]

고성현 기자
CXL 2.0 D램. [ⓒ삼성전자]
CXL 2.0 D램. [ⓒ삼성전자]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차세대 반도체 연결 표준으로 꼽히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생태계가 확장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올해 말부터 CXL 메모리 양산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다. 다만 현재 상용화될 기술 수준이 CXL의 온전한 강점을 살리지 못하는 만큼, 이를 가속하기 위한 메모리 업계의 빠른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CXL 2.0 기반 256GB 모듈인 'CMM-D'를 하반기 양산할 계획이다. CMM-D는 CXL 2.0을 기반으로 메모리 풀링(Pooling)을 지원하는 D램 모듈로, 이를 활용하면 호스트 프로세서가 풀(Pool) 형태로 구축된 대용량의 메모리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CPU 옆에 개수가 한정된 DIMM 장치에 꽂아야만 했던 D램을 용량 제한·유휴 영역 발생 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역시 올해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96GB·128GB 용량의 CXL 2.0 모듈에 대한 고객사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CXL은 핵심 프로세서와 GPU·AI가속기·메모리 등 장치를 연결하는 차세대 프로토콜이다. 기존 PCI익스프레스(PCIe)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낮은 지연시간과 높은 대역폭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프로세서와 여러 개 메모리를 묶어 사용하는 메모리 풀링(Pooling) 기능과 데이터 이동속도를 급격히 높이고 실시간으로 여러개 자원을 활용하는 캐시 일관성(Cahce Coherency)을 제공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프로세서가 CXL 스위치를 통해 여러개의 전자장치와 연결하고 데이터를 주고 받는 형태다.

이러한 패브릭(Fabric) 구조 덕분에 데이터센터의 랙(Rack) 운용성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원래는 특정 용도로 설계된 랙을 다른 용도에 맞게 사용하려면 다시 설계하거나 구축하는 난이도가 높아 막대한 비용이 들었지만, CXL 시스템은 장치만 교체해 용도를 바꿀 수 있어 구축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신규 CPU가 출시되면 CPU와 메모리, 네트워크 장치 등으로 구성된 랙을 다시 만들어 기존 랙을 대체하는 형태였다면, CXL이 도입되면 랙 교체가 아닌 CPU 교체만으로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울러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하는 인공지능(AI) 생태계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현재 주류인 초거대언어모델(LLM) 구동용 서버는 엔비디아의 GPGPU와 NV링크(NVlink)를 중심으로 한 고속 인터커넥트 시스템이 안착된 상황이다. 따라서 다른 AI가속기를 채택하더라도 이를 연결하는 인터커넥트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어려워, 엔비디아의 가격 주도권이 높아지는 독점 체제가 굳혀져 있다. 반면 CXL은 저렴한 비용과 칩으로도 고속 인터커넥트 환경을 구축할 수 있어, 소형언어모델(sLM)과 같은 특화 모델 구동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CXL 메모리 양산이 시작될 경우 우선 범용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관련 상용화 사례가 늘 것으로 보고 있다. CXL 2.0이 스위치 없이 랙 구조를 변경하고 메모리 용량을 넓히는 과정만이 포함된 만큼, 이 기능을 필요로 하는 일부 서버에만 탑재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CXL 2.0까지는 메모리 풀 내 이미 프로세서가 할당받은 영역을 타 프로세서가 접근할 수 없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본격적인 CXL의 개화 시기는 2026년 이후가 꼽힌다. CXL 3.1 등 데이터 공유를 기반으로 한 장치와 소프트웨어가 본격화되고, 이에 걸맞는 CXL 스위치칩이 양산되는 시기여서다. 특히 서버용 CPU 시장의 선두주자인 인텔이 내년 하반기에 CXL 3.0을 지원하는 신규 제품 '다이아몬드래피즈' 출시를 계획하고 있어, 이를 시작으로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인텔이 최근 위기를 맞이한 것은 여러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다수의 빅테크가 LLM 중심 AI 투자에 집중하면서 CXL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진 가운데, CXL 컨소시엄을 이끄는 인텔이 구조조정 등에 나서면서 계획에 대한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한 메모리 업체들이 CXL 메모리 개발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양사는 올해 말 기준으로 CXL 2.0 메모리 양산을 위한 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핵심 표준인 3.0 이상의 모듈에 대한 개발은 CPU·스위치 개발 시기 대비 더딘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차세대 제품 개발과 양산에 1~2년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현 시점에서 관련 구상이 확정돼야만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CXL 시장의 핵심은 스위치와 소프트웨어(SW)지만 시장 개화를 이끌 수 있는 키는 메모리반도체 제조사가 쥐고 있다"며 "LLM이 수익적인 문제로 AI의 비주류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HBM 이외의 미래 먹거리가 준비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성현 기자
narets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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