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플랫폼 붕괴 국면…“감독 추가보상, 제2오징어게임 탄생 막을수도”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창작자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에 콘텐츠 성공에 따른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추가보상 청구권’ 도입시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 플랫폼이 이미 매출 이상의 콘텐츠 투자를 감수하고 있는 가운데, 추가보상 청구 부담까지 더해진다면 수년 내 붕괴 수준으로 치달을 것이라 전망이다. 이에 콘텐츠 제작을 넘어, 유통 관점에서도 심도 깊은 정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용희 경희대 교수는 4일 오후 국회 대중문화미디어연구회와 한국방송학회가 서울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디지털 혁신 시대의 미디어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진행한 세미나에서 “국내에서 유료방송과 OTT 등이 없다면 콘텐츠를 제작 유통할 수 없음에도 불구 지금까진 정책에서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디지털 혁신 시대에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방송통신발전기금·추가보상 청구권 등 미디어 산업의 합리적인 자원배분과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의 중요성을 조망하고자 마련됐다.
◆ 흥행실패는 모르쇠, 수익만 나누는 추가보상 청구권
먼저, 추가보상 청구권은 이미 IP을 양도한 저작자·실연자·영상저작물 저작자가 이를 최종 제공하는 방송사·극장·OTT 등 플랫폼에 추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앞서 지난 21대 국회에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예컨대, 추가보상 청구권 도입시 오는 12월26일 공개될 ‘오징어게임2’의 작가와 감독이 이미 대가를 받고 IP를 플랫폼에 양도하더라도 해당 작품을 유통 중인 플랫폼(넷플릭스)을 상대로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해당 개정안은 2021년 국정감사에서 오징어게임을 계기로 넷플릭스의 IP 독점 계약방식이 화두에 오르자, 그 연장선상에서 마련됐다.
넷플릭스는 제작사에 제작비부터 해외에서의 마케팅·더빙 작업 일체를 지원하고 IP를 양도받는 계약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 경우 콘텐츠 흥행에 따른 추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어 창작자들의 의욕을 상실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다만, 정작 업계에선 창작자에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한다는 도입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해당 개정안이 콘텐츠 생태계의 구성원 중 일부 창작자만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특히,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 교수는 추가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플랫폼이 투자를 축소하고 일부 창작자에만 투자가 집중된다면, 보상금을 받은 소수의 창작자 외 다른 창작자와 플랫폼은 오히려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스크를 줄이고자 흥행이 보장되는 장르에 제작 투자가 집중돼, 결과적으로 콘텐츠의 다양성 감소 및 K-콘텐츠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추가 보상금을 이미 지급하고 있다고 언급된 독일과 프랑스 등의 경우 적절하고 균형적인 보상 보장 혹은 중대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인 가운데, 국내의 경우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김 교수는 지적했다. 당장 영상물 매출에서만 제작 배급사와 영상저작물 최종제공자가 각각 7대3의 비율로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국내 OTT 산업의 적정 투자와 보상 추정을 위한 시뮬레이션 검토 결과에 따르면 총 콘텐츠 투자비용은 약 9855억원으로 집계된 가운데, 현재 OTT의 예상 기대 수익인 9013.2억원을 초과했다. 즉, OTT의 경우 현재 손해를 감수하고 투자를 집행 중이라는 해석이다.
김용희 교수는 “횡재적 수익에 따른 보상 뿐 아니라, 실패에 대해서도 창작자가 감수할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 흥행을 위해 글로벌 홍보 등에 투자했던 기여도는 왜 고려되지 않냐”라며 “과도한 수익 배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추가보상 청구권이 도입되는 경우 플랫폼의 입장에선) 제작비 줄이고 옥석을 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플랫폼이 다양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합리적인 수익모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인데, 이들의 투자 의지를 고취시킬 수 있는 정책 인프라가 만들어져야할 것 같다”고 제언했다.
◆ 업계는 삼중고…"하청기지화 이미 시작"
이어진 패널토론에선 추가보상 청구권 도입에 앞서 현재 국내의 상황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참석자들의 공감이 주를 이뤘다. 팬데믹 시기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창작자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플랫폼은 더 이상 이를 감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특히, 엔데믹 전환에 따른 여행 등 외부활동의 증가로 시간이 갈수록 플랫폼 성장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추가보상 청구권 도입은 국내 콘텐츠 기업의 글로벌 하청기지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내 플랫폼이 무너지면서 제작사가 헐값에 해외 플랫폼에 IP(지적재산권)를 내놓는 상황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욱이 이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작품을 만들어도 이를 편성할 플랫폼이 없거나, 플랫폼이 편성하는 작품의 수가 줄어든 가운데 현장에선 배우들이 “출연할 작품들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창작자를 보호한다는 추가보상 청구권의 취지엔 공감한다”라면서도 “추가보상 청구권의 경우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용자의 귀에 쏙 들어오게 창작자들의 피해를 이야기하는 부분 있는데, (산업을 연구하는) 학계의 입장에선 굉장히 위험하게 들린다. 과잉재현되어 (이용자에) 잘못된 방식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작 플랫폼 생태계를 정확히 반영되지 않은 정책이 구현된다면 오히려 창작자들이 역량을 펼칠 미디어 생태계가 망가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라며 “입법 주체인 국회나 정부가 그런 부분들을 면밀히 검토해 국민들의 복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양질의 콘텐츠를 많이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는 정책이나 법안을 만들어야겠다”고 밝혔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는 “우리는 근본적으로 미국식 IP 비즈니스의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싶어하면서 유럽의 강력한 저작인격궉 보호체계를 가지고, 유럽의 보상금 체계를 가져오려고 한다”며 “한국의 저작권은 음악 저작권만 관련되어 과도하게 발전한 경향이 있는데 해외사례를 그냥 가져오면 한국의 복잡한 맥락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IP 측면에서 보상을 확실히 하려면 협상 단계에서의 역량을 키우는게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계약 단계에서부터 보상 체계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만들 것인가를 이야기 해야 한다”라며 “예컨대 어느정도 투자 혹은 자부담했을 때 IP 권리를 가져가는 게 합당한 지 사업계 내부 행위자들 간 논의가 활성화되는 것이 차라리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 "방발기금 부과대상 확대보단, 부담 축소에 초점 맞춰야"
한편 이날 세미나에선 방발기금 대상 확대에 논의도 이뤄졌다. 앞서 업계 일각에선 기존 사업자가 부담하는 방발기금을 줄이는 한편 영향력이 커진 새로운 미디어 사업자들의 이들이 그에 맞는 책임과 역할을 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 시점 제한된 공공재나 특정 권역에서의 배타적 사업기회를 통해 독점이윤이 발생한다는 방발기금의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방발기금 대상 확대와 관련해 관련 사업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방발기금 확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OTT는 물론, MPP를 포함한 일반PP와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우 유료방송사업자와 지상파방송사업자, 종합편성 또는 보도 전문채널, 홈쇼핑 사업자 등 허가·승인사업자와 달리 배타적 권리를 부여받지 않은 가운데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김영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은 “해외 규제를 무분별하게 국내에 가지고 들어온다면 국내 산업이 저해될 것”이라며 “(플랫폼이 방발기금을 부담하는) 유럽이나 캐나다의 경우 글로벌 플랫폼이 직접 투자하고 있지 않는 경우로, 우리나라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직접 투자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논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방발기금 사용내역을 보면, 본래 취지와 다르게 특정 기관에 대해 상당부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기금 납부자와 직접적 연관성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기금 사용 목적 명확하지 않고 납부자의 이익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기금 부과의 정당성이 약화된 것 같다. 투명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창희 소장도 “방발기금의 대상 확대 의견이 나오지만 현시점 우리나라는 미디어 산업의 진흥이 중요하다”라며 “이러한 맥락에서 방발기금의 대상 확대를 고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업자의 기금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이냐가 더 중요한 고민거리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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