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결산/과학] 삭감부터 증액까지…R&D 예산에 휘청거린 과학계
[디지털데일리 채성오기자] 올 한 해 R&D 예산 편성과 조정 과정을 지켜본 과학기술계는 비판의 목소리와 더불어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에 바빴다. R&D 예산이 삭감되면서 연구현장을 떠나는 연구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일부 연구의 경우 연속성을 보장할 수 없어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 진 후에 관련 예산을 다시 증액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처럼 R&D 생태계가 흔들리면서 과학기술계의 불안감이 증폭된 가운데, 비상계엄 선포 직후 맞이한 탄핵정국으로 국회가 정치 현안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과학 관련 정책 논의도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일례로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가 R&D 예비타당성 조사 폐지 법률 개정안'도 국회 논의 시기를 가늠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고무줄식 예산 편성에 과학 경쟁력 흔들
지난해 정부는 올해 R&D 예산을 전년 대비 16.6% 줄인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가 과학기술계의 날선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비판 여론이 커지자 관련 예산을 일부 증액한 26조5000억원으로 확정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기업 보조금 성격의 나눠주기식 사업, 성과부진 사업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 결과"라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과학기술계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겠다고 밝히며 3대 게임체인저(AI 반도체·첨단바이오·양자) 육성 및 선도형 R&D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된 내년도 R&D 예산은 29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5% 증가했다. 그러나 당초 정부 R&D 예산안인 29조7000억과 비교하면 1000억원 줄어든 규모다.
항목별로 보면 혁신·도전형 R&D에 1조원을 투자하며 기초연구에 역대 최대규모인 2조9000억원을 지원한다. 세계 최대 다자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 참여 지원 등 글로벌R&D 분야에는 2조20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특히 과기정통부는 지난 11일 정부 R&D 예산 항목을 발표하면서 기초연구 투자에 대해 '선도형 연구생태계 구축을 위해 미래 대비 및 연구생태계 강화를 위함'이라고 밝혔으나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올해 R&D 예산 삭감 여파로 기초과학 연구지속성이 일부 훼손된 상태에서의 내년 예산 증액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이하 예정처)도 정부의 R&D 예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예정처는 지난 10월 발간한 '2025년도 예산안 12대 분야별 재원 배분 분석' 보고서에서 "2024년 R&D 예산 감액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예측가능성 및 신뢰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다시 변동성이 높은 예산안을 편성했다"며 "R&D 분야에 대한 정부 정책 방향의 안정성, 일관성, 예측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출범 200일 맞이하는 우주청, 성과와 과제는
올해 과학계는 '우주항공청' 출범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지난 5월 27일 과기정통부의 외청으로 설치된 우주항공청은 경남 사천에 둥지를 틀고 우주·항공 산업 경쟁력 제고에 나섰다. 우주항공청은 개청 후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의 항공우주 부분을 비롯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및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등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이관받았다.
13일부로 출범 200일을 맞이한 우주항공청은 다양한 성과를 거뒀지만, 향후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산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존 리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임무본부장 등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백악관에서 30년 경력을 갖춘 우주항공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는 한편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확보해 향후 관련 산업 확대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0일 본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된 내년도 우주항공청 예산은 9649억원으로 전년 대비 27% 증가했다. 우주항공청은 한국형 발사체를 고도화하고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3106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국제적 협력 분야에서도 다양한 성과를 기록했다. 우주항공청은 지난 6월 UN 우주의 평화적 활용 위원회인 'COPUOS'와 UN 달 활동 콘퍼런스에 참여해 국제사회에 우주항공청 개청을 홍보했다. 이어 지난 7월엔 우주과학 분야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인 'COSPAR 2024'를 부산에서 개최했고, 8월엔 세계 최초로 태양 코로나의 온도·속도를 동시 관측할 수 있는 '태양 코로나그래프'를 NASA와 공동 개발했다.
반면 우주항공청이 직면한 과제도 산적하다. 위원장이 대통령으로 격상된 '국가우주위원회'가 지난 5월 개청 직후 열린 이래 한 번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진입함에 따라 위원장인 대통령의 참석이 불투명해 국가우주위원회 개최도 요원한 실정이다.
차세대 발사체 지적재산권 공동 소유권을 두고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 중재에 나선 우주항공청의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됐지만, 이마저도 빠른 시일 내 해결이 어려운 모습이다.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우주항공청에 협상 여지를 둔 조정 의향을 전달했지만 현재까지 검토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연초부터 R&D 예산 조정 여파 등으로 과학계에 혼선이 빚어졌던 만큼 이를 회복하고 생태계 재건에 만전을 기해야 할 상황이지만 탄핵정국이라는 변수가 모든 상황을 잠재웠다"며 "우주항공 분야도 국제적인 협력과 민간 주도 사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시점에서 정부·국회 역할에 따라 향후 계획을 보장하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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