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자체 IP 강화하고 외부 IP 끌어안고… 길 찾는 게임사들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다각화된 포트폴리오가 게임사 생존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콘텐츠 소비 트렌드 변화와 글로벌 경쟁 심화, 신기술의 등장으로 IP(지식재산)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게임사들은 기존 IP를 시리즈화거나 내외부에서 신규 IP를 발굴하며 활로를 찾고 있다.
◆간판 IP, 끝없이 확장… 충성도 높이고 장벽 낮춘다
2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과 데브시스터즈 등 경쟁력 있는 단일 IP를 갖춘 게임사들은 이를 시리즈화 하는 방식으로 IP 확장을 꾀하고 있다.
넥슨은 작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기존 IP의 종적 확장을 강조했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 인기 게임들을 각기 다른 장르와 플랫폼으로 이식하겠다는 계획이다.
넥슨은 오는 3월28일 던전앤파이터 세계관을 기반으로 제작한 PC·콘솔 하드코어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퍼스트버서커: 카잔(이하 카잔)’을 출시하며 이같은 종적 확장을 본격화한다.
넥슨은 작년 ‘지스타’에선 던전앤파이터의 정식 후속작격인 ‘프로젝트 오버킬’도 공개했다. 자회사 넥슨게임즈가 오픈월드 형태로 개발 중인 동일 IP 기반 ‘아라드’도 출격 대기 중이다.
또한, 넥슨은 상반기 내 자사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마비노기’를 재해석한 ‘마비노기 모바일’, 메이플스토리의 블록체인 게임 ‘메이플스토리N’을 출시하며 IP 강화에 나선다.
데브시스터즈는 국내 게임사 가운데 IP 종적 확장에 가장 오랜 기간 공을 들여온 게임사다. 대표 IP ‘쿠키런’을 10여년에 걸쳐 시리즈화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3년 ‘쿠키런’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쿠키런: 오븐브레이크’, ‘쿠키런: 킹덤’, ’쿠키런: 마녀의성‘, ‘쿠키런: 모험의탑’ 등 기존 IP 기반에 장르만 달리한 게임들을 출시 중이다. 서비스 지역만 243개, 누적 이용자 수는 2억명이다. 누적 매출은 작년 10월 기준 1조원을 돌파했다.
데브시스터즈는 올해는 난투형 캐주얼 게임 신작 ‘쿠키런: 오븐스매시’를 공개할 예정이다. 1분기 글로벌 유저 테스트를 거친 뒤 단계를 밟아 연내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엔씨소프트(이하 엔씨)도 하나의 IP를 다양하게 활용 중인 게임사다. 최근엔 대표 IP ‘리니지’를 방치형 게임으로 재해석한 게임을 출시하는 등 IP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이처럼 단일 IP를 시리즈화하면 기존 팬들이 익숙한 세계관과 캐릭터를 지속 접할 수 있게 돼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연스레 진입 장벽도 낮다. 누적된 브랜드 신뢰도로 인해 기존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적응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나아가 굿즈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 가능성도 크다.
이같은 기존 IP 확장 전략은 글로벌 게임업계 트렌드이기도 하다.
작년 8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서구권 최대 게임 전시회 ‘게임스컴’에선 인기 IP를 기반한 신작들이 다수 공개됐다. 이들 게임 상당수는 진일보한 게임성을 보여주거나 전작과 크게 다른 매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뜨거운 관심을 독차지하며 IP의 힘을 실감케했다.
카잔의 개발을 맡은 네오플의 윤명진 대표는 당시 현장에서 “작년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IP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서비스한 게임이나 좋은 서비스를 반복해서 제공해 온 게임들에 대한 반응, 호응이 컸다”고 짚은 바 있다.
게임 이용자나 매출이 몇몇 인기 IP에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서, 이러한 IP 프랜차이즈 전략은 향후 게임사들의 핵심 방향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IP도 사서 키운다… 외부 투자로 미래 잡는다
외부 개발사 투자를 통해 IP를 확보하려는 시도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크래프톤은 이같은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 중인 게임사다. 중장기 사업 전략인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를 앞세워 2021년부터 작년 8월까지 27개사에 투자를 단행했다.
글로벌을 아우르는 스테디셀러인 ‘PUBG: 배틀그라운드’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산을 외부 투자에 활용, 다양한 IP를 가져와 장기적인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심산이다.
해외 개발사가 개발한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것에서 나아가, 인기 IP 판권을 사들여 크래프톤만의 색깔을 입혀 자체적으로 관련 게임을 개발하는 행보도 엿보인다. 크래프톤은 올해도 국내외 유망 개발 스튜디오 등에 2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크래프톤의 행보는 중국 최대 게임사이자 퍼블리셔인 텐센트와 유사하다. 텐센트는 든든한 자체 개발 IP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M&A(인수합병) 정책을 펼쳐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 라이엇게임즈, 핀란드 슈퍼셀 등 개발사를 품에 안으며 내로라하는 글로벌 게임사로 성장했다.
크래프톤은 올해 외부 IP를 활용한 게임들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다크앤다커모바일’, ‘서브노티카2’, ‘딩컴투게더’ 등으로, 각기 다른 장르적 매력을 갖춘 작품들이다.
중견 게임사 웹젠 역시 외부 투자를 통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웹젠은 작년에만 외부 개발사 4곳에 42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해 다양한 장르 게임의 판권을 가져왔다. 수집형 RPG, 오픈월드 액션 RPG, 3D 턴제 게임 등으로 웹젠이 그간 추구했던 방향성과는 궤가 다르다. 웹젠은 그간 뮤 IP를 기반한 MMORPG 중심으로 사업을 꾸려왔다.
이러한 전략은 빠르게 변화하는 게임산업 트렌드에 맞춰 유연하고 속도감 있게 맞춤형 게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또, 해당 IP를 개발하던 스튜디오를 인수하면서 외연 확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도 모색할 수 있다.
다만, 투자 경쟁이 치열한 현 상황에서는 경쟁력 있는 IP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중소 게임사의 경우, 대형 게임사 물망을 벗어난 IP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야 하는 처지라 흥행 타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임으로 다시 쓰는 원작 이야기… 팬덤 앞세워 흥행 타율 높인다
비(非)게임 IP를 게임으로 출시해 IP를 재창출하는 행보도 두드러진다.
넷마블은 원작 소설, 드라마, 영화 등으로 인지도가 높은 외부 IP를 게임으로 개발하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일곱 개의대죄: 그랜드크로스’, ‘제2의나라: 크로스월드’, ‘신의탑: 새로운세계’, ‘나혼자만레벨업: 어라이즈’ 등이 대표적이다.
트랜스미디어 전략은 지급 수수료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탄탄한 원작 팬덤을 앞세워 흥행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높은 원작 IP 인지도 덕에 마케팅 활동 등에 소비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실제 누적 조회수 143억회를 기록한 웹소설과 웹툰 기반으로 제작된 나혼자만레벨업: 어라이즈는 작년 5월 글로벌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전 세계 누적 이용자 수는 출시 5개월 만인 10월께 5000만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IP 활용 전략은 원작 IP 수명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원작 콘텐츠와 연계된 상품화를 통해 수익 창출 방향이 확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넷마블 방준혁 의장은 앞선 지스타 현장에서 “국내외 유저들과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IP들이 굉장히 많다. 이를 게임의 새로운 스토리와 연계하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연동한다면 소재 고갈이나 미디어의 한정성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혼렙이 그런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번에 출품한 왕좌의게임: 킹스로드 역시 글로벌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신작 게임들이 오래된 게임들보다 주목 받지 못하는 업계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IP 확보는 생존과 직결되는 과제가 됐다”며 “자체 IP를 꾸준히 개발하면서 외부 유망 IP를 함께 가져가는 식의 균형 잡힌 사업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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