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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규제 진단④] 명분만 있는 ‘신속입법’, 대형 플랫폼에 스타트업도 위축

이안나
구글과 메타, 아마존 등 쟁쟁한 빅테크들이 선전하는 지금, 한국 인터넷 기업들도 몸집을 키우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해외 플랫폼 위협 속에서도 자국 플랫폼들이 중심을 잡고 있는 곳이다. 이에 전세계 빅테크들과 맞설 수 있도록 경쟁력을 입증한 국내 플랫폼을 글로벌 무대로 세우고, 나아가 대한민국 새 먹거리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 제기돼 왔다. 그러나, 내부의 위협이 더 큰 상황이 도래했다. 정부와 국회가 규제 장벽을 높이면서, 플랫폼을 향한 칼날이 매서워졌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현재 인터넷 플랫폼을 향한 규제 현황을 점검하고, 전문가들 진단을 들어볼 예정이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코로나19 수혜를 입으며 성장하던 플랫폼업계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달라진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엔데믹 현상으로 플랫폼 성장세는 급격히 둔화했다. 이런 흐름을 ‘정상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예측 불가능한 대외환경과 자금경색 심화는 플랫폼업계에 어느 때보다 큰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플랫폼 업체들만 지어야 하는 부담이 또 있다. 정부·국회에서 옥죄고 있는 ‘규제 칼날’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독과점 심사지침 발표를 시작으로 플랫폼업계 혁신 시도는 크게 위축된 분위기다. 국회도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이와 관련한 규제 법안을 신속히 내놓고 있다.

지난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먹통 사태’ 후, 방송통신발전기본법(방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게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신산업 근거 규정, 개인정보·성범죄· 디지털 권익·데이터관리·온라인광고 관련 규정 등 다방면으로 최근 동향에 대응한 법안들이 지난 한 해 150건 발의됐다.

규제 법안을 발의하는 주체들은 그 대상이 모든 플랫폼이 아닌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플랫폼이라고 강조한다. 네이버·카카오 등 특정 분야에서 독과점 성격을 띄는 대형 플랫폼을 겨냥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효성 없는 규제 법안들이 대형 플랫폼에만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는 건 아니다.

‘중소 플랫폼과 이용자들을 보호한다’는 목적과 달리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다수 규제들이 사업 불확실성을 키우기에 부담이 상당하다는 입장이다. 사업 확장 자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규제가 생기면 기업 입장에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이 상승하게 되는데, 결국 이 영향이 사용자 후생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엄마·아빠(대형 플랫폼)가 발목 잡히고 어려움을 겪는데 자식들(스타트업)이 편할 리가 없다”며 “오히려 대형 플랫폼은 규제에 따라 적절히 피봇팅(사업방향 전환)도 가능지만 스타트업은 규제 하나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정부에서 규제 대상을 획정할 때 통상 사용되는 기준은 매출액과 이용자 수다. 규제 대상 조건이 두 가지 이상일 때 그 기준이 ‘그리고(and)’ 인지, ‘혹은(or)’ 인지 단어 하나에도 치열한 토론이 이어지고 방향도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타트업이 성장을 위해 매출액과 이용자 수 증가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타트업이 조금만 외형을 키워도 규제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현재 스타트업 업계는 투자 혹한기를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 기업 인수합병(M&A) 심사 기준 강화는 그 부작용으로 스타트업 투자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타트업 M&A도 생존전략 중 하나이며 이 제도가 활성화돼야 생태계 역동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독점거래법상 M&A 규제 조항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규제가 강화되면 국내 플랫폼 산업은 물론 스타트업 생태계에 혼란이 와 소비자 후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주희 국민대 플랫폼 SME 연구센터 연구본부장도 “플랫폼을 한 덩어리로 보고 규제를 가할 경우,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 동력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며 “플랫폼은 특정 산업이 아닌 비즈니스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산업별 특성, 기업 성장 단계별 상황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진 후 규제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인터넷기업협회 디지털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22 인터넷산업규제 백서’를 살펴보면 발의된 법안들은 대부분 신산업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질서를 목적으로 규정을 만들거나 디지털환경에서 권리 침해 보호를 위한 내용이 대다수다. 동향에 따라 ‘신속입법’으로 대응한다는 취지이지만, 오히려 속도에 치중해 규제 파급효과에 대해선 면밀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지털경제연구원은 “규제를 집행함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영향력, 집행 과정에 대한 불확실성, 과잉 규제에 대한 우려 등이 입법 과정에서 더 많이 논의돼야 한다”며 “인터넷산업에 대한 개별 이슈를 단편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산업 전반 움직임과 미래 변동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안나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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