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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국가통합망⑤] 쟁점① 독점이냐 vs 경쟁이냐

김재철
국가통합망 구축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가장 큰 이슈는 이번 사업이 독점 구조로 추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공급 독점과 관련한 논란은 올해 2월 감사원이 만든 보고서가 출발점이었다. 감사원은 “다른 기종 간에는 연동이 불가능한데도 기존 TRS망과 연동하도록 함으로써 기존 TRS망을 구축한 특정기업이 독점하게 돼 예산낭비 및 기술종속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무 부처인 소방방재청이나 시스템 공급업체인 모토로라는 “현 상황에서 경쟁 벤더의 시스템이 완벽하게 연동될 수 없기 때문에 복수의 벤더가 공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독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보화 전략계획 수립 이전에 사업 발주 = 감사원은 우선 정보화전략계획(ISP)을 먼저 마련한 뒤 시스템 구축에 착수해야 하는데도, 시범사업이 끝난 뒤 1차 확장사업을 하면서 ISP를 수립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보화 사업의 경우, 사업규모·성능규격·추진일정 등을 미리 설계해 전체 시스템을 시행착오 없이 구축할 수 있도록 ISP를 수립해야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생략됨으로써 선정된 공급업체가 독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업체 간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통합망 구축사업의 ISP를 수립하고 통신망을 설계한 뒤 시스템 제조사들로부터 전체 사업의 비용, 유지보수 방안, 기술이전 방법, 단종 시 부품공급 대책 등과 관련한 제안서를 제출받아 이를 평가해야 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소방방재청은 “ISP를 수립하려면 예산이 확보돼야 하는데, 당시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이 끝나서 추가 예산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06년 5월 만들어진 세부추진계획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정업체의 장비만 납품할 수 있도록 했다? = ‘독점’과 관련한 감사원 지적의 핵심은 특정 업체만 장비를 납품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테트라 기술이 개방형 유럽표준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업체에서 생산한 시스템 간에는 상호 연동이 되지 않으므로 공급업체들의 적절한 경쟁을 유도한 뒤 사업을 추진했어야 한다는 것이 감사원의 입장이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벤더 간 시스템 연동 표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구축돼 있는 경찰청 테트라망과 연동하도록 제안함으로써 사실상 특정업체의 장비만 납품할 수 있도록 기술규격서가 마련됐다”는 것이 감사원 지적의 요지다.

또 이처럼 독점 공급구조가 되다 보니 공급업체가 생산이 중단된 옛 버전의 장비를 납품했고, 공급가격 역시 민간업체에 공급할 때 보다 3배 정도 비싸졌다는 점을 폐해로 지적했다.

◆표준기술이라도 공급업체마다 차이점은 존재 = ‘기존 경찰청 테트라망과의 연동’이 통합망 시스템 공급의 조건이 됨으로써 특정 벤더의 제품만 납품할 수 있게 했다는 감사원 지적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통신기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지적”이라는 반응이다.

국내 연구기관의 테트라 전문가는 “표준은 아주 낮은 수준의 기준이기 때문에 표준기술의 통신시스템이라도 세부적인 프로토콜 등에서는 차이가 없을 수 없다”며, “표준에서 규정된 것보다 훨씬 고난이도의 중요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개별 기업의 독자 기술이 접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토로라 측은 “독점이란 말은 ‘기술력’이라는 측면에서 독점기술을 선택했다는 뜻인데, 당시 정통부가 테트라 기술을 선택한 것은 사업의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특정기업의 독점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모토로라 김경훈 부장은 “새 버전의 시스템과 연동이 되지 않아 단종된 옛 버전이 공급됐다고 하는데 어불성설”이라며, “당시 새 버전은 상용화되지 않아 연동 부분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연동이 된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단종될 경우에도 어느 기간까지는 계속해서 해당 시스템을 공급한다거나, 시스템이 새 버전으로 바뀌었을 때 기존 시스템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한다는 등의 내용이 계약서 다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찰청망과 연동키로 한 것은 기존 투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였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단일기업 시스템 구축’이 대세 =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테트라 방식으로 통합망을 구축한 다른 나라들은 모두 단일기업의 시스템을 구축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연동이 안 되는데다가,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트라협회가 벨기에·독일·룩셈부르크에서 두 개 벤더의 연동테스트를 했지만, 협회의 호환성 기준과 실제 운영에 다른 점이 많아 실패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재난대응이라는 목적을 가진 통합망에서 연동에 초점을 맞춰 이기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감사원 보고서는 ‘연동’ 문제와 관련해 루마니아에서 현재 연동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하지만 루마니아의 경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데다가, 도심(EADS)과 국경(모토로라)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시스템을 연동해서 쓸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테트라협회의 호환성 기준이 재난통신망에서 요구하는 기능들을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연동해야 된다고 하면, 국가통합망을 천천히 준비하자는 얘기가 된다”고 말했다.

◆단말기 다변화 등으로 비용절감 가능해 = 특정기업이 독점 공급하도록 함으로써 전체 사업비용이 높아진다는 감사원 지적에 소방방재청은 “모토로라가 시스템이 전체 사업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방재청 관계자는 “전체 사업비에서 모토로라 기지국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다. 오히려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보조중계기가 국산화돼 있어 상당 부분 비용이 절약된다”며, “앞으로 수출까지를 감안해서 최대한 국산화를 독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비용절감을 위해 전체 사업비의 40%를 차지하는 단말기를 기능별로 다변화해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KISDI 김사혁 연구원은 “기능을 차별화하면 단말기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방방재청 또한 단순 무전기능만 쓰는 사용자용으로 저가형 단말기를 적극 요구할 방침이다.

소방방재청은 이번 사업을 0~3단계로 세분화하고 있으며, 2단계는 돼야 서로 다른 벤더의 시스템 간에 대부분의 기능이 연동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범국가적 재난통신망을 하루빨리 구축할지, 아니면 경제성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판단은 정부의 몫이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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