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제갈공명과 슈퍼컴퓨터
삼국지의 하일라이트인 '적벽대전'을 앞두고, 촉나라의 제갈공명은 제단을 쌓고 동남풍을 일으키기 위해 필사의 주문을 건다.
미리 연환계를 써서 수백척에 달하는 위나라 조조의 군선을 쇠밧줄로 묶어놓는데 까지는 성공했는데, 문제는 바람의 방향이었다.
조조의 군선쪽에서 부는 북서풍때문에 화공(火攻)을 쓴다하더라도 오히려 공격하는 쪽이 화를 입는 상황.
그러나 바람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놓기 위한 제갈공명의 주문은 기적처럼 이뤄졌고, 조조의 백만대군은 불타 전멸한다.
후세의 일부 과학자들은 제갈공명의 주문은 당시 촉과 동맹관계였던 오나라 제독 육손의 기룰 꺾어놓기 위한 '철저한 쇼', 또는 '고도의 심리전'이었을 수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계절적으로 북서풍이 분다하더라도 주기적으로 며칠에 한번씩은 동남풍이 분다는 사실을 제갈공명은 미리 알고 있었고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이 흘러,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한 지금은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과학과 날씨'는 여전히 문제이고, 제갈공명의 쇼도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연일 날씨 오보로 욕을 먹던 기상청이 최근 550억원 규모의 슈퍼컴퓨터 3호기를 발주하고 공급업체 선정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해 여름 6주(6월 28일~8월 2일) 연속으로 주말 날씨 오보를 냈다는 논란이 일면서 그 불똥이 슈퍼컴퓨터로 튀었다. 기상청에선 예보 정확도 향상을 위해서라도 3호기 성능을 최대로 이끌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기상청은 기존 2호기까지 사용했던 일본의 수치예보 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3호기부턴 세계 2위 수준인 영국기상청의 통합수치예보모델을 도입하는 한편, 2호기보다 10배 이상 빠른 200테라플롭스(1테라플롭스는 초당 1조번의 연산이 가능하다) 규모로 구성하게 된다.
기상청은 이에따라 이번 주부터 5개 서버업체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성능실험(BMT)에 들어갔다.
이번 슈퍼컴 3호기 사업은 서버업체라면 누구나 따내고 싶어 하는 사업이지만, 최근 급등하는 환율 탓에 기상청이 제안한 성능을 맞추기엔 빠듯할 것으로 보인다.
또 여느 때보다 까다로운 요건 등을 통해 성능을 극대화시키려는 기상청의 고민 역시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신형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다고 해서, 기상청은 날씨를 잘 맞출 수 있을까.
슈퍼컴의 성능이 좋아진다고 해서 기상청이 날씨를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지면 더욱 정교한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어 정확도를 높일 순 있겠지만, 기상예보에서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 인프라 뿐만 아니라, 수치예보 모델과 예보관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을 의식해서였는지, 기상청 측은 올 초 ‘기상예보 정확도 제고 실천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 우리의 기술력으로 독자 개발한 모델을 시험운영하고 예보인력 관리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객관적 예보평가체계를 도입해 환류를 강화하고 기상위성 관측을 2010년부터 개시할 예정이다.
언론인, 농어민, NGO 등 이해당사자 및 외부전문가로 예보성과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정부의 지원 역시 중요할 것이다. 슈퍼컴퓨터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책논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국내 슈퍼컴퓨터 관련 법안은 재작년부터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를 중심으로 초안까지 마무리 됐으나, 정부조직 개편과 경기침체에 따른 대형 현안이 많이 제기됨에 따라 정부와 국회차원의 본격적인 논의가 미뤄져 왔었다
현재 ‘슈퍼컴퓨터 육성법(가칭)’을 추진 중인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은 “슈퍼컴퓨터 사업은 단순히 기상장비를 하나 더 들여오는 문제가 아니라, 신성장동력의 일환으로 범정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999년 기상청이 처음으로 슈퍼컴퓨터 1호기인 NEC의 ‘SX-5/28M2'를 도입한 이래 이제 10년이 흘렀다.
국가차원에서도 보다 체계적인 지원 바탕이 마련되는 등 슈퍼컴 활용 방안에 대한 적극적 논의가 이뤄진다면 기상청 직원 체육대회에 비가 내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백지영 기자> 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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