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개발자 스토리] 결국 최악의 선택… 위험한 ‘빨리빨리’ 개발 문화

심재석 기자
IT 산업의 주인공은 개발자다. 현재 전세계를 호령하는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의 창업자들은 모두 개발자 출신이며, 개발자의 힘으로 현재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현재 이 회사들에 가장 중요한 자산도 개발자들이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IT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발자다. 그들의 창의력과 기술력이 IT산업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국내 개발자들은 주인공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강도는 세고, 그에 비해 처우는 좋지 않다는 비판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IT개발자를 지원하는 청년들이 줄어들었고, IT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왔다.
개 발자들은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미디어는 극단적인 목소리만 담아왔다.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리치인터넷애플리케이션(RIA) 대표업체 투비소프트와 함께 국내 개발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개발자들의 희노애락을 그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연재코너를 마련했다. 아홉 번째 이야기는투비소프트 교육사업팀 김지영 팀장이 전한다. [편집자 주]


한국인이 자주 찾는 해외관광명소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조카가 외출할 때면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빨리, 빨리빨리”이러고 있다. 어디서 그런걸 배웠을까?

한국인의 밥 먹는 속도는 정말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다. 강의 나가서 현장의 개발자들과 식사할 때면 2~3숟가락이나 먹었을까? 어느새 식사 마치시고 “천천히 드세요”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다.

필자도 짧지 않은 회사생활에 밥 먹는 속도가 어느 정도 빨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어떻게 식사를 하면 그렇게 빨리 드실 수 있을까? 마치 씹지도 않고 그냥 위까지 음식물을 투하하는 것만 같다.

식사 후엔 식당 커피 자판기 앞에 가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필자 역시 다르지 않다.  전철로 출퇴근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갈아 타기 위해 환승역마다 몇 번째 칸 몇 번째 문에 서야 하는지 외우고 있다. 이것도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 중 한 부분일 것이다.

유럽으로 출장을 자주 가시는 분께 유럽과 한국의 개발환경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요? 라고 여쭤 본적이 있다.  그분 말씀이 자동차 바퀴 4개를 단다 치면 유럽은 바퀴 하나 끼어놓고 나사 하나 끼고 조인다음 제대로 다 조여졌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 나사를 마무리하고 그렇게 바퀴 하나가 다 마무리 되면 그 다음 바퀴를 달고 그렇게 하나씩 4개를 다 단다

반면 우리나라는 빠른 일 처리를 위해 우선 바퀴 4개를 다 달아놓고 나사를 어설프게나마 끼어놓고 그 다음 나사를 조이면서 마무리한다. 이게 훨씬 처리속도가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끔 터지는 문제가 나사 하나가 남는 다는 거다.  나사가 남을 정도면 나머지 나사들은 제대로 조여져 있는지 확신이 없다는 거다.

바퀴 4개를 달고 나사 하나가 남는다면 우린 그 나사를 무시할 것인지 다시 재 작업을 할 것인지를 결정 해야 한다.  나사 하나를 무시했다간 그 나사 하나에 의해 크던 작던 반드시 파장이 있을 것이다. 다시 재 작업을 하자니 시간이 문제다. 이런 상황이면 다른 나사들의 조임 상태도 의심이 되는 상황이다. 결국 나사를 다 풀어서 다시 조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바퀴 다는 일의 예를 들었지만 개발도 마찬가지다.
한국문화의 '빨리빨리'는 IT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빨리빨리'보다 훨씬 더 빠른 울트라급 빨리빨리다

정해진 건 날짜 밖에 없다. 완료날짜에 맞춰 얼추 나와 있는 화면 본 수를 사람수로 나눠서 분배한다.

우선 급하니 화면을 먼저 그린다. 급하게 그린 화면에 위의 나사처럼 빠진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 부분들의 파장은 설계에 미친다. 그로 의해 설계가 바뀌고 그러다 보면 개발과 설계가 함께 나아가기도 한다. 최악의 상황은 바퀴를 빼서 다시 조이듯이 설계가 완전 뒤집어 지기도 한다. 그 동안 작업 했던 화면은 폐기처리다 하지만 프로그램 오픈 일자는 변동이 없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개발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업무를 분석하고 거기에 맞는 화면을 만들고 디버깅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빨리 서둘러 하는 것들을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면 우린 ‘양과 질’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 ‘양’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되기 때문에 우린 ‘질’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빠름 속에 깊이가 빠져나간다.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나라 IT를 교각 없는 다리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위태로움을 느낀다. 기술력도 안정성도 고려되지 않은 채 겉모습 갖추기에만 급급한 개발현실이 답답해온다.

속도를 조금만 줄이자. 이제는 질적 향상에 심혈을 기울일 때가 됐다.

<투비소프트 교육사업팀 김지영 팀장>
심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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