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팬택 최고경영자(CEO) 박병엽 부회장의 행보가 휴대폰 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007년 4월 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시작한 이후 17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한 CEO가 돌연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지난 6일 “지난 5년 반 동안 휴일 없이 일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너무 힘들다”라며 내년 사퇴한다고 밝혔다. 스톡옵션도 포기했다.
팬택은 박 부회장이 지난 1991년 직원 6명으로 시작한 회사다. 90년대 이후 창업한 제조업체 중 유일하게 연 매출 1조원 이상을 달성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 노키아 애플 등 굴지의 외국 업체와 겨뤄 거둔 성과다. 이런 그가 물러날 의사를 전한 것이다.
몸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올해 들어 심장 수술을 받기도 했다. 무박 3일 해외 출장과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인 일상 등 빡빡한 일정 소화가 무리가 됐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지금의 팬택을 만들었다.
박 부회장은 기업구조개선작업을 위해 4000억원 가량의 자신이 가진 지분 모두와 개인 재산 등을 채권단에 제공했다. 창업자로서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그 뒤 월급쟁이 CEO로 백의종군했다. 회사는 망해도 오너는 망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국내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사가 어려워진 뒤 원망하던 개인 투자자들도 박 부회장의 이런 모습에 우군으로 돌아섰다. 누구보다도 불만이 많았지만 팬택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박 부회장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간 주주총회를 참석하며 들은 주주들의 평가다.
지금 휴대폰 업계는 격동의 시기다. 팬택은 기업구조개선작업 중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전문업체로 성공적으로 변화했다.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 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안심은 이르다. 세계 휴대폰 1위 노키아마저 흔들리는 이 때다.
사실 박 부회장의 사의는 건강보다는 오는 12월31일로 예정됐던 기업구조개선작업 종료를 두고 채권단과 갈등이 영을 빚은 탓이다. 사재를 털었던 것처럼 팬택을 위해 자리에 연연치 않겠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채권단도 상황의 급박함을 인식하고 사의 표명 하루 만에 기업구조개선작업을 예정대로 종료키로 합의했다.
그가 사퇴 의사를 전하며 한 말처럼 주말에 편하게 여가를 즐기고 낮에 반주라도 한 잔 하는 삶은 2015년 매출 10조원, 연간 휴대폰 판매량 4000만대라는 팬택의 장기 목표를 이루고 누릴 호사다. 현실적으로 박 부회장을 대신할 CEO를 찾기도 어렵다. 그의 사퇴 철회 소식을 기대한다. 팬택도 국내 휴대폰 업계도 아직 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