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처럼 져버린 누리솔루션…금융IT업계가 아쉬워하는 이유
<사진설명>2년전인, 2010년 1월. 누리솔루션이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 후 찍은 기념식 사진. 이날 누리솔루션은 전직원의 가족을 초청해 지난 10년 동안 거둬들인 스스로의 성과를 자축했다.
금융솔루션 업체인 누리솔루션(대표 김종현)이 지난 20일, 삼성SDS에 경영권 매각을 공식발표했습니다. 이로써 국내 금융IT업체중 가장 촉망받았던 업체 한 곳이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물론 여기서 '사라진다'는 표현은 회사의 퇴출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누리솔루션은 기존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함은 물론 경영진 및 임직원의 고용을 보장받았습니다. 또한 삼성SDS측은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누리솔루션의 규모를 지금보다 크게 확장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경위야 어쨌든 누리솔루션의 매각 소식은, '신데렐라' 신화를 기대했던 금융 IT업계 에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실이 알찼던 누리솔루션이 지분 100%를 모두 넘겼다는 것은 겉으로 알려졌던것 보다 내부 사정이 더 어려웠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리솔루션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김종현 대표가 자신의 지분(38%)를 모두 삼성SDS에 넘겼다는 것을, 그를 10년간 지켜봐왔던 기자로서는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누리솔루션 관계자는 "앞으로 지분비율 때문에 일일히 신경쓰고 싶지 않았고, 오직 일에만 전념하기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누리솔루션은 유동성을 확보하기위해 지분의 일부를 SK C&C에 매각, 10억원의 자금을 수혈받았던 적이 있고, 몇년후 다시 지분을 되찾아옴으로써 경영권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놀라운 뚝심을 보인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 보입니다.
다시 옛 '장기신용은행' 출신의 김종현 대표를 중심으로 누리솔루션 멤버들이 예전처럼 독자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 승승장구, 그러나 단 한번의 시련
누리솔루션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융IT업계에선 매우 촉망받았던 업체입니다. 특히 여신관리시스템및 사후관리, 리스크관리 등 전문가시스템 분야에서 뛰어난 실적을 쌓았으며 지금도 이 분야에서 많은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바젤II 특수는 누리솔루션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누리솔루션도 단 한번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부터 '고비'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짙게 남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처음에 누리솔루션에게 천재일우의 기회, 종합 금융IT솔루션 회사로서의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9년 9월, 누리솔루션은 사업비 110억원 규모의 제일저축은행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수주하게 됩니다. 사업내용및 사업규모면에서 누리솔루션 창사이래 최대 사업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기회'였습니다.
누리솔루션은 좌고우면할 것 없이 이 사업에 사운을 겁니다. 모든 핵심 역량을 이 사업에 집중시켰으며, 수십억원의 막대한 R&D비용을 투입해 중견 금융회사용 코어뱅킹(Core Banking)시스템인 '프레임워크'도 개발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제일저축은행 차세대시스템 사업은 누리솔루션에게 기존 여신종합관리시스템 영역에서 금융권 차세대시스템 시장으로의 영역 확장이라는 보다 큰 의미가 숨어 있었습니다.
누리솔루션은 이 사업을 계기로 그토록 원했던 국내 제 1의 금융IT 솔루션 기업을 꿈꾸었습니다.
이 사업만 멋지게 성공할 수 있다면 은행권은 몰라도 2금융권 차세대시스템 시장에서 IT서비스 빅3의 간섭(?)을 받지않고 독자적인 시장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뒤, 어제까지의 희망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반전됩니다.
제일저축은행 차세대 프로젝트가 완성될 무렵인 지난 2010년말, 발주자 측에서 시스템의 완성도 등을 트집잡는 등 프로젝트 완결이 수차례 연기되기 시작합니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러갔습니다.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한 누리솔루션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적자'가 불가피했습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좀 더 영악하게 대처했더라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는 금융IT업계가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결국 누리솔루션은 지난해 하반기 제일저축은행을 상대로 법적 절차에 돌입하게됩니다. 프로젝트 대금을 받기위해서 선택한 마지막 방법입니다. 이 때까지만해도 충분히 법적인 다툼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운명은 더 가혹했습니다. 마침 국내 저축은행에 불어닥친 부실사태 여파로 인해 지난해 제일저축은행이 P&A방식으로 퇴출된 것입니다. 그동안 사업 잔금을 받기위해 진행해왔던 '법적 절차'가 사실상 의미가 없게 되버린 것입니다. 설령 승소한다하더라도 기존 누리솔루션이 요구했던 채권액중 얼마만이라도 회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누리솔루션, 더 강해지겠지만...." 아쉬움
이런 답답한 과정속에서 마침내 지난 20일 삼성SDS로의 경영권 매각 소식이 들려오게 된 것입니다.
내부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누리솔루션에게 더 이상 기다릴 수 있는 여유, 상황의 반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누리솔루션은 강력한 시장 영향력과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삼성SDS와의 협력을 통해 기존의 시장 경쟁력을 크게 배가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누리솔루션은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SDS와의 파트너십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삼성SDS의 애니프레임(Anyframe) 위에 누리솔루션의 강점인 여신ㆍ위험관리ㆍ유가증권 솔루션을 탑재해 고도화된 금융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해외 진출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도 기존 삼성SDS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프레임워크 기반위에 누리솔루션의 솔루션이 얹혀진다면 강력한 시장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으로 삼성SDS는 이번 누리솔루션의 인수로 금융 IT부문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동안 누리솔루션은 IT서비스 '빅3'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많은 금융 IT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IT서비스 빅3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았고, 누리솔루션은 그 힘의 균형을 역이용하는 영악함 모습도 보였습니다.
기술력이 뛰어나다보니, 발주처에서도 컨소시엄 포함 여부에 관계없이 누리솔루션에게 사업 참여를 요청한 적도 적지않습니다. 물론 삼성SDS의 자회사로 편입된 이상, 앞으론 IT서비스 업체들을 넘나드는 활기한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누리솔루션은 4월의 목련처럼 화려하게 피웠다가 순식간에 졌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실수 때문에 10년의 노력이 물거품된 것은 아무리 거리를 두고 생각해봐도 두고 두고 아쉬운 장면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숱한 머니 게임의 유혹을 뿌리치고 지금까지 묵묵하게 제길을 걸어온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10년후 우리 모습은 국내 10위 이내의 SW회사, 아시아 최고 수준의 금융솔루션회사, 노력과 성과를 함께하는 나누는 종업원지주회사로 발전시키겠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좋은 회사를 함께 만들어 가자."
2년전, 10주년 창립 기념식때 김종현 대표가 직원들에게 했던 축사중 일부입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약속했던 '종업원지주회사'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야속한 역설이지만 국내 최고, 아시아 최고 수준의 금융솔루션회사로의 도약은 누리솔루션이 경영권을 매각하고 나서야 마침내 출발선에 서게된 듯 합니다.
아무쪼록 누리솔루션의 앞날에, 그리고 그동안 회사를 이끌어왔던 많은 사람들의 앞날에 건승을 빕니다.
[박기록 기자의 블로그= IT와 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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