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강력해져야할 저축은행중앙회의 IT거버넌스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발전되거나 확장되지 못하고 오히려 축소되거나 퇴보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어찌됐건 불쾌한 일이다.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은 기존 저축은행중앙회가 운영하는 통합전산망으로 전국 저축은행 전산망을 통합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이 소식은 그런 '불쾌한 뉴스'의 느낌을 준다.
아쉽지만 국내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했었던 저축은행의 IT운영 체계가 앞으로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됐다. 여기에서 '변혁'는 매우 유감스럽다는 뉘앙스를 갖는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저축은행업계 스스로가 제공했다는 점에서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앞서 <디지털데일리> 지난 5월 '일부 저축은행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서 이중시스템이 존재할 수 있다' 의혹을 기사화한 바 있다.
'이중시스템'은 쉽게 말해 '이중장부'와 같은 의미다. 금융당국 등 외부 감사에 대응하기위해 정상적인 시스템인 것처럼 보여주고, 실제로는 불법대출 등을 기록한 '또 다른 시스템'의 존재다. 조폭영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얘기다. 국민들이 최소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공공기관' 수준의 엄청난 신뢰를 보낸다는 점을 고려할때, 실제 이런 '이중시스템' 의혹은 그 자체만으로 충격이다.
금융감독원이 이같은 개별 저축은행들의 전산조작 가능성에 대비해 '중앙회 통합전산망으로 모두 통폐합' 이란 강력한 메스를 들이댄것은 당연한 조치이다.
하지만 쾌도난마와 같은 시원함이라하더라도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아쉬움이 남는다. 저축은행업계 자체의 비즈니스 환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저축은행은 새마을금고, 신협 등 3대 서민금융기관으로 묶이지만 있지만 그 역할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차별화된다.
서민들에게 여전히 문턱이 높은 일반 시중은행들에게 저축은행은 비교적 다양한 여수신제품을 제공한다. 또한 현행법상 저축은행은 여전히 '지역적 한계' 벗어나는데 한계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해당 영업지역에 특화된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를테면 도심 오피스 지역, 시장 지역, 농어촌 지역 등에 산재해 있는 전국 90여개의 저축은행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금융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 경쟁력이 있음을 자부해왔다.
물론 이러한 차별화를 구체화할 수 있는 도구는 'IT 인프라'의 개선이다. 지난 몇년간 저축은행업계에서 이어진 '차세대시스템'프로젝트는 그것을 반영한다.
하지만 앞으로 저축은행중앙회로 저축은행업계의 IT인프라 체계가 통폐합될 경우, 이같은 다양한 비지니스 환경을 유연하게 지원할 수 있을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몇가지 부분에서 미리 걱정이 앞선다.
그런 부분들중 하나가 저축은행중앙회의 취약한 'IT 거버넌스'이다. 이번 IT통폐합 결정에 따라 앞으로 중앙회 중심의 IT거번넌스 체계는 더 강해져야 한다. IT예산과 인력 보강은 당연히 뒤따라야할 문제다. 회원사들의 여력으로 안된다면 정부의 지원도 요구된다.
저축은행 중앙회의 운영경비는 매년 책정되는 회원사들의 회비로 충당된다. 연간 80억~90억원 안팎의 IT예산도 여기에서 나온다. 회원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새로운 IT사업 요건이 생기면 추가로 회원사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요즘처럼 경기가 불황이고 시장환경이 좋지않으면 신규 IT사업은 철회되거나 보류되기 일쑤다.
전국 60여개의 저축은행이 이용하는 기존 저축은행중앙회의 통합전산망 운영을 위해 고작 연간 '80억원'밖에 확보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저축은행 금융서비스의 차별화는 요원하다.
한해 2500억~3000억원의 IT예산을 배정하는 국민은행과 비교하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무리지만 향후 90개의 저축은행을 지원하게될 중앙회 통합전산망의 운영비용을 지금보다는 훨씬더 확장돼야 한다.
IT투자를 위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도 물론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중앙회 차원에서는 하나의 금융 업무시스템을 개발하려면 이사회를 개최해 일일히 회원사(저축은행)들의 의견을 물어야하고, IT프로젝트를 위한 예산을 의결해야 한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는 회원사들의 이해관계를 개발요건에 반영해야한다. 기존의 의사결정 구조를 감안한다면, 향후 저축은행업계가 신속한 IT대응을 위해서는 의사결정 구조부터 혁신하는 것이 순서로 보인다.
향후 IT부문에서 저축은행중앙회의 역할을 훨씬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저축은행 IT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앙회의 IT거버넌스가 먼저 강화돼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회원사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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