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다시 뛰는 가전③] 100년 먹거리, 생각의 틀을 바꿔라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올해는 생활가전 혁신의 해가 될 것” 삼성전자 윤부근 CE부문 대표가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그 동안 생활가전은 별다른 혁신을 거듭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동원리에 있어 처음 개발됐던 당시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냉장고만 하더라도 1917년 켈비네이터가 개발한 컴프레서를 이용한 압축방식이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다. 이는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등 다른 생활가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효율을 높이고 설계 방식의 변화 등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여기에 사용자 편의성과 디자인,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초기에 개발됐던 생활가전과 비교하기 어렵다.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모터를 이용한 전기차만큼의 혁신은 아직까지 활발하게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올해는 지난 1세기 동안 이어져온 생활가전이 한층 변모한 기술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1세기를 준비하는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생활가전 업계 전반에 걸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아이디어로 차별화=생활가전은 지역별로 터줏대감이 존재하고 문화적, 사회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선진시장과 성장시장을 나눠 프리미엄, 중저가 라인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삼성전자, LG전자가 오는 2015년 전 세계 생활가전 1위를 달성하겠다는 것도 이와 같은 의도가 숨어있다.
먼저 삼성전자는 전반적인 프리미엄화와 함께 기술 자체의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주방가전에서의 노림수가 다채롭다. 식기세척기는 150년 전 개발된 원리에서 벗어나 본체 내부의 밑면과 뒷면에 물이 나오는 노즐을 배치한 뒤 반사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식기를 세척하는 ‘워터월’ 방식이 핵심이다.
이는 윤 대표가 “생활가전 부문은 거의 100년 이상 파격적 혁신 없었던 산업”이라며 “이제 가전 산업이 시장을 변화시키는 혁신을 수용할 때가 왔으며 삼성이 이런 변화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LG전자는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기조속에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기술력도 탄탄하다. 리니어 컴프레서, 다이렉트 드라이브(DD) 모터 등은 이미 제품력으로 확실한 입증을 받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수기냉장고, 프리스타일 냉장고, 곡면 글라스 냉장고 등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변화를 불어 넣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에어컨에 향기로 심리적인 안정을 돕는 아로마테라피 기능을 적용한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변화의 속도가 늦다면 프리미엄과 소비자 신뢰도에 중점=생활가전산업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 기기와 비교하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지역별 업체의 소비자 충성도가 상당히 높고 해외 업체가 공략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제대로 시장에 진입하면 오랫동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제품력은 탄탄한 상황이라면 브랜드 강화와 함께 보다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삼성전자 ‘클럽드셰프’, LG전자 ‘LG스튜디오’가 이런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따지고 보면 한국 생활가전 업계는 오래전부터 주방가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대표적인 제품이 전자레인지다. 경제성장기인 1980년대 국산 전자레인지는 전 세계 시장을 호령했다. 북미를 비롯해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주요 지역에서 1위에 올랐고 VTR, 비디오테이프, 전자레인지, 컬러TV브라운관과 함께 수출 핵심 품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국내 업계가 전자레인지 이후 주방가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데 있다. 오븐은 주방가전은 물론 빌트인 가전의 핵심이다. 전 세계 빌트인 시장 규모는 약 500억 달러. 이는 전체 가전 시장의 1500억 달러의 30%가 넘는 수치다.
클럽드셰프는 유럽 업체가 쥐락펴락하는 주방가전을 공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번째 단추는 오븐이다. 오븐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냉장고, 인덕션, 후드, 워머, 식기세척기 등 다른 주방가전으로의 파급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가구 업체인 비앤비이탈리아, 아크리니아와의 협업도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LG스튜디오도 기본적인 골격은 클럽드셰프와 비슷하다.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네이트 버커스와 함께 소비자 트렌드 연구를 비롯해 디자인 협업, 제품 개발 및 브랜드 관련 활동에 나서고 있다. 표면적으로 다른 점은 삼성전자가 요리사를 활용했다면 LG전자는 디자이너라는 것 정도다.
향후 생활가전산업에 있어 2014년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 기기처럼 단기간 승부를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앞선 기술과 디자인을 통해 프리미엄화에 박차를 가하고 브랜드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의 결과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최대 시장인 유럽과 북미에서 현지 업체와의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는 것도 주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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