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규제의 일관성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지난 11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이용자에게 피해를 입힌 SK텔링크에 대한 징계수위를 논의했다. SK텔링크는 모회사인 SK텔레콤인 것처럼 오인하게 하거나 약정에 따른 요금할인을 보조금으로 설명해 이용자에게 피해를 입혔다. 특히, 주로 50대 이상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방통위 사무국은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해 과징금 2억6000만원에 두 번의 20% 가중을 통해 약 3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보통 ‘중대성이 약한 위반행위’에 3억원 이하의 기준 과징금을 매긴다. SK텔링크가 이 경우에 해당됐다.

그런데 ‘중대성이 약한 위반행위’에 대한 기준 중 하나는 바로 이용자의 피해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 여부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피해를 회복시킬 수 있는 중대성 약한 위반행위라면 실제 SK텔링크가 실제 이용자 피해를 회복시키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냈다.

실질적으로 이용자의 피해를 회복시키겠다는 생각에는 공감한다. 형식적이고 별 타격이 되지 못하는 과징금 제재보다 훨씬 실효성 있는 제재라고 볼 수 있다. 만약 SK텔링크에 대한 징계가 실질적인 이용자 피해회복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국내 방송통신 규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방통위의 규제가 원칙과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이용자 피해구제가 사업자에게는 차별규제로 둔갑하는 것 아닌지 우려도 든다. 지금까지 이동통신 3사 SK텔링크와 유사한 사례로 수차례의 위반행위를 저질렀지만 이 같은 결정은 없었다. 과징금, 영업정지의 반복이었다. 앞으로 SK텔링크와 유사한 위법행위가 나타날 경우 동일한 규제기준을 적용할지는 미지수다.

‘규제의 일관성 없음’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방통위 스스로가 키웠다. 그동안 방통위는 영업정지나 방송사의 재허가, 신규사업자 선정 등에서 원칙과는 달리 상황마다 상당히 유연한(?) 정책을 선보여왔다. 좋게 말하면 정책의 유연함이지만 달리 보면 원칙이 없음이고 사업자 차별이었다.

예를 들면 제4이동통신의 경우 시장이 포화됐기 때문에 한 곳 이상의 사업자를 선정할 수 밖에 없다는 기준을 세우고, 재무적 평가에 유독 엄격했다. 하지만 방송시장에서는 같은 시장환경임에도 불구 무려 4곳의 종합편성PP를 무더기로 선정했다. 나중에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M&A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말이다. 시장의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뿐 만이 아니다. 종편의 경우 스스로 세운 기준에 미흡하더라도 아직은 사업 초기단계라는 이유로 무한 인내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초기 시장안착이 기준이라면 알뜰폰도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어느 통신사는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이유로 단독영업정지를 맞는데, 다른 어떤 사업자는 위반율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며 두루뭉술 넘어간다. 상임위원들이 다음번에 걸리면 무조건 2주 이상 영업정지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지켜지지는 않는다. 꽤 큰 잘못으로 보이는데 초범(?)이라고 얼마 되지 않는 과징금으로 끝나기도 한다. 준엄하게 영업정지를 때려놓고 실제 적용시기는 사업자 충격이 적을 때를 고민한다. 그때마다 이유와 핑계가 있지만 규제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논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규제에도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강공이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기준 없이 그때그때 달라서도 안된다. 이용자 피해를 회복시키겠다는 최 위원장의 아이디어에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실험적 규제가 아닌 실제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하고 차별 없는 하나의 원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규제권한의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솜방망이인데, 다른 어떤 이에게는 쇠몽둥이가 돼서는 안된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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