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⑫] 한국 부품 산업, 10년 뒤엔 중국에 따라잡힐 수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은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 상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수출액 1위 상품은 반도체였다. 수출액은 무려 626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연간 수출액이 600억달러를 웃돈 단일 품목은 반도체가 유일하다. 디스플레이 패널 수출액은 283억8000만달러로 반도체만큼은 아니지만 수출의 한 축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 10년 후에는 어떨까. 결과는 단언할 순 없지만, 중국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이미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중국과 전면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약진으로 고전하는 디스플레이=중국은 일본, 한국, 대만과 비교해 디스플레이 시장에 가장 늦게 참여한 후발 생산국이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지원책을 등에 업은 현지 업체들은 거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전자정보산업 조정 및 진흥계획’, 2012년 ‘제12차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 방침을 표명하고 각종 지원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패널 업체의 법인세 인하(25%→15%), 32인치 이상 LCD 관세 인상(3%→5%), 핵심 부품 관세 인상(편광판 4%→6%, 6세대 이하 유리기판 4%→6%, 백라이트용 편광판 6%→8%, ITO 터치 필름 5%→8%) 등의 정책을 추진하며 자국 기업을 끌고 밀어줬다. 중국 정부의 최종 목표는 LCD 패널 자급률을 2014년 60%, 2015년 8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 중국 공업정보화부(공신부)는 자국 내 디스플레이 자급률이 사상 최초로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목표치에는 다소 못 미치는 결과이긴 하나, 2011년 이 수치가 5%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주변국 패널 기업들, 특히 중국에 공장이 없는 기업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장 큰 위협은 ‘묻지마 투자’다. 중국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자금으로 공장을 짓고 물량을 쏟아낸다. 공급과잉으로 패널 값이 떨어질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중국 1위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인 BOE를 예로 들면, 기판 크기가 8세대(2200×2500mm)인 베이징 B4와 허페이 B5 공장을 지을 때 각각 해당 공장이 들어서는 지방 정부로부터 50%와 58%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BOE가 최근 신규 투자 발표를 한 10.5세대(3370×2940mm) 공장인 허페이 B9도 전체 투자액 약 7조원 가운데 허페이시가 45%의 자금을 대기로 했다. 기술력은 이미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2015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 SID) 전시회에서 BOE는 8K(7680×4320)에서 한 발 더 나아간 82인치 10K(10240×4320) 디스플레이를 전시하며 세를 과시했다. 일본의 정보 미디어들은 이를 두고 “과거 한국의 주요 패널 업체들이 일본을 누른 뒤 행해왔던 ‘세 과시’를 최근 중국 기업들이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반으로 TV, 휘어지는 플렉시블 패널의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도 중국 후발 기업들의 추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도체도 불안=디스플레이와 달리 반도체 분야는 상대적으로 느긋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주력 반도체 상품은 메모리의 한 종류인 D램이다. 막대한 시설투자가 매년 병행돼야 하는데다 미세화를 위한 기술 장벽이 높아 중국 기업이 쉽게 해당 시장에 진출하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낸드플래시 역시 동일한 진입 장벽이 있다. 다만 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현지 기업이 ‘메모리 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특히 D램은 10나노대 중반께 미세화 전환이 멈출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와 있다. 중국이 마음 먹고 D램 시장에 진출한다면, 이 시기 이후부턴 추격을 따돌리긴 어렵게 된다.
중국 정부의 재정 지원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6월 중국 국무원은 국가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고 투자 펀드를 조성해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작년 10월에는 중국 공신부가 ‘중국 IC 산업투자기금’을 설립했다. 1차 기금 규모는 1200억위안(약 21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펀드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자본과 기업은 최근 해외 반도체 기업을 연이어 인수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전략 방향에 맞춰 착실히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작년 8월 북경 후아 캐피탈은 이미지센서 기업인 옴니비젼을 19억달러에 인수했다. 올해 1월에는 파운드리 업체인 SMIC, 후공정 업체인 JCET가 중국 정부의 반도체 펀드를 활용해 스태츠칩팩의 지분 100%를 사들였다. 스태츠칩팩의 인수로 반도체 후공정 업계에서 JCET의 지위는 ASE, 앰코에 이어 3위로 올라가게 됐다. 3월에는 상하이 지역 펀드인 서밋뷰 캐피탈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 특수 D램 설계 업체인 ISSE를 6억4000만달러에 인수했다. 4월에는 동심반도체유한공사가 한국의 D램 설계 업체인 피델릭스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투자 펀드를 조성한 이후 현지 자본이나 기업이 해외 업체를 M&A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메모리에 치중돼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설계, 파운드리 전공정 및 후공정 등 전체 반도체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중이어서 10년 후에는 한국을 앞서는 반도체 산업 국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팹리스로 대표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서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팹리스 반도체 업체들의 총 매출액 규모는 80억1700만달러로 한국(13억9900만달러)보다 5배 이상 컸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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