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법칙’ 세상을 바꾼 한 천재의 선구적 이론
* 5월 25일 발행된 오프라인 매거진 <인사이트세미콘>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지난 50년 전 제시한 ‘무어의 법칙’은 세상의 변화를 부추긴 혁신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이론을 착실하게 지켜온 인텔은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1위 업체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무어의 이론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분명한 것은 모든 종사자들이 이 이론을 지켜기 위해 노력해야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는 1965년 4월 당시 유력 전자 분야 잡지였던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 ‘집적회로에 더 많은 부품 밀어넣기(Cramming more components onto integrated circuits)’라는 글을 기고했다. 무어는 이 글에서 반도체 집적화 기술은 전자 분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며, 집적화가 진전될수록 제조비용은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집적화와 제조원가’의 상관관계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집적도는 매년 약 2배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한 반면 5년 뒤인 1970년에는 최소 부품당 제조원가는 현재의 10분의 1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무어의 글을 읽은 카버 미드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교 교수는 이 같은 이론에 대해 ‘무어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0년이 흐른 1975년 무어는 1년에 2배가 아니라 “약 2년마다 칩의 집적도는 2배씩 증가한다”며 자신의 이론을 수정했다. 이는 현재 알려진 ‘매 18개월마다 집적도 2배 증가’와는 다른 내용이다. 2년이 18개월로 둔갑한 이유는 당시 인텔의 중역이었던 데이빗 하우스가 무어의 이론을 기반으로 “칩 집적도는 18개월마다 2배로 높아질 것”이라고 발언한 데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무어가 창업한 인텔도 모든 공식 문서에서 ‘무어의 법칙’에 대해 2년에 2배씩 집적도가 늘어난다고 정의하고 있다.
자연법칙이 아닌 무어의 이론
2년에 2배씩 반도체의 집적도가 증가한다는 고든 무어의 이론은 아이작 뉴턴의 중력법칙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부 자연성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상업적 관점으로 보면 반도체 업체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 집적도를 높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반도체 업계에선 변하지 않는 원칙, 혹은 규칙 같은 것이다. 고든 무어의 이론은 미국 실리콘밸리 형성 초기 이 같은 미래 트렌드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지난 5월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어의 법칙’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행사에서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지만 전문가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한 천재의 경험 기반 통찰력이 반도체 업계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그의 이론에 맞춰 빠른 속도로 더 작고 빠른 제품을 양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제품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 시중에 출시됐다.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생활 패턴, 사회 문화적 관습은 송두리째 변했다. 세계 경제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업체인 <IHS>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무어의 이론은 직‧간접적 영향을 모두 포함해 최소 3조달러(약 3000조원)에서 최대 11조달러(11경원)에 이르는 미국 GDP 성장을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일 포드 <IHS> 반도체 부품 분야 부사장은 “무어의 법칙은 지난 반 세기 동안 기술혁신, 경제발전,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이론이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가 무어의 이론을 지켜나가면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더 평평(평등)해졌다.
무어의 이론은 지속될까
50년이 지난 현재, 2년에 2배씩 트랜지스터의 집적도가 증가한다는 무어의 이론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집적도 그 자체는 높일 수 있겠으나 설계 복잡성 증가, 공정 미세화의 어려움으로 생산 원가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실익이 없으면 집적도 증가 속도는 더뎌질 수 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인터내셔널비즈니스스트래티지(IBS)>에 따르면 20나노와 14/16나노 핀펫 공정의 게이트 1억개당 원가는 각각 1.42달러, 1.62달러로 28나노(1.4달러) 대비 1.4~15.7% 높다. 20나노 공정부턴 물리적으로 회로 선폭을 줄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는데다 설계, 공정, 장비, 재료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8나노 대비 칩 면적이 축소돼도 원가는 오히려 높아진다는 것이 <IBS>의 설명이다. 인텔 역시 이 같은 문제로 14나노 5세대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브로드웰)의 출시 시기를 당초 계획 대비 6개월 이상 늦췄다.
반도체 전자설계자동화(EDA) 업체 시놉시스의 CEO인 아트 드 제우스는 “(칩 면적 축소 관점에서) 무어의 법칙은 향후 10년간은 계속될 전망이지만 과거처럼 트랜지스터 제조 비용을 낮추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무어의 이론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지만, 분명한 건 있다. 반도체 소자, 장비, 재료 등 관련된 모든 업계가 무어의 이론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성장을 이어나가기 위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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