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업계에 볕 들다
* 6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극심한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아왔던 태양광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올해 태양광 발전 수요는 전년 대비 30% 늘어나는 반면 모듈 가격은 한 자릿수 하락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길고 길었던 불황의 터널을 뚫고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중국과 일본, 미국이 전 세계 태양광 발전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장기 전망도 좋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지난해 발간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14 보고서에서 2050년 태양광 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0년 전망치(22%) 대비 상향 조정된 것으로 최근 태양광 산업의 성장 기대감을 잘 나타낸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meicon.com
1878년 9월 프랑스 파리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수학 교사였던 오귀스탱 무쇼는 세계 최초의 태양열(熱) 수집기를 선보였다. 무쇼의 발명품은 태양열을 모아 증기 힘을 얻을 수 있었고, 이 힘으로 기계를 돌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을 보러 모여든 이들에게 말했다. “공짜 태양열 에너지로 모든 종류의 기계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죠. 언젠가 석탄은 바닥나겠지만, 태양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므로 영원한 에너지원이 될 겁니다.” 무쇼의 발명품은 대중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태양열을 활용해 에너지를 얻는 비용은 석탄 대비 굉장히 비싸 상용화되지 못했다. 태양의 에너지를 활용해보겠다는 인류의 첫 시도는 그렇게 실패로 끝이 났다.
35년이 흐른 1913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사업가 프랭크 슈먼은 태양열을 활용한 대규모 증기 발전 설비를 이집트 나일 강변에 구축하고 여기서 생산된 에너지로 사막에 물을 공급했다. 수입 석탄이 엄청나게 비싼 열대 지방에서 그의 태양열 증기 발전 설비는 이상적인 동력원으로 인식됐다. 슈먼은 사하라 사막에 약 6만㎢ 규모로 태양열 발전소를 건설하면 당시 전 세계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슈먼의 원대한 꿈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석탄보다 저렴한 석유의 사용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석유는 석탄 대비 채굴과 가동이 훨씬 쉬웠다. 석탄으로 배 한척을 띄우려면 일주일간 100명이 일을 해야 했지만, 석유는 한 명이 단 하루만 일을 하면 됐다. 나일 강변에 설치됐던 그의 태양열 발전 설비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무기로 재활용됐다.
프랭크 슈먼 이후로는 태양광(光)을 직접적인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태양전지 기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태양전지는 현대 물리학 이론에 바탕을 둔, 보다 고차원적인 기술이다. 금속에 빛을 비추면 미세하게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에드몬드 베크렐, 빛은 파동임과 동시에 알갱이와 같은 입자임을 증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태양전지는 위대한 물리학자들이 밝혀낸 다양한 광전효과(光電效果 photoelectric effect)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 역시 갈 길은 멀었다. 1950년대에 개발된 태양전지는 효율이 8%로 낮았고 1와트(W)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무려 10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비쌌다. 1958년 미국 뱅가드 인공위성에 최초로 태양전지가 탑재되는 진전을 보이긴 했으나 태양광 발전이 화석 연료를 대체하기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었다.
태양광 발전 모듈의 가격 하락, 그리드패리티
오일쇼크가 터진 1970년대에는 주요 선진국과 유수의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태양전지의 효율 향상에 매진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만큼의 효율 향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4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태양전지의 전력 변환 효율은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 시스템의 전력 변환 효율 측정은 ▲대기의 질량 정수(Air Mass, AM)가 1.5인 위도 40° 지역에서 ▲빛에 의한 에너지 강도는 ㎡당 1000W ▲기준 온도는 25℃인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같은 조건을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아 주요 기업과 연구소는 태양광의 스펙트럼과 유사한 인공적 광원을 설치해 효율 테스트를 진행한다. 예컨대 전력 변환 효율이 17%인 다결정 실리콘 기반 태양광 셀은 ㎡당 170W의 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셀을 모듈로, 모듈을 어레이로 구성했을 때 나타나는 전류 손실과 기후 조건(구름과 미세먼지 등에 따른 입사 광량 저하), 셀 표면의 온도 상승 등으로 인해 실제 태양광 발전시 전력 효율은 실험실 테스트 수치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낮은 효율 탓에 태양광 발전단가는 여전히 비싼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태양광 모듈 가격은 지난 40년간 꾸준하게 떨어졌다. 전체 발전단가 역시 큰 폭으로 낮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1970년대 와트당 70달러에 육박했던 태양광 모듈 가격은 2008년 와트당 약 4달러, 지난해에는 0.66달러까지 떨어졌다. 태양광 모듈을 구성하는 실리콘 셀, 실리콘 셀의 주요 재료인 잉곳과 웨이퍼, 기초 소재인 폴리실리콘 가격도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중이다. 최근의 극심한 가격 하락은 2011년부터 시작된 ‘태양광 버블’이 주된 이유다. 생산 업체 난립에 따른 ‘공급과잉’이 주요 소재와 부품 값을 지나치게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태양광 발전소의 설계, 건설, 운영, 폐지까지 모든 비용을 총 발전량으로 나눈 발전 원가인 LCOE(Levelized Cost of Electricity)는 의미 있는 수준의 하락을 지속했다. 독일의 경우 이미 지난 2011년 LCOE 기준 그리드패리티(grid parity)를 달성했다. 그리드패리티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와 기존 화석 연료의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와 멕시코, 미국의 일부 지역도 그리드패리티를 달성했다. 현재 그리드패리티를 달성하고 있는 지역의 특징은 전력단가가 비싸거나, 일조량이 풍부해 최대한의 전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주요 소재, 부품의 가격 하락 속도는 과거 대비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리드패리티에 도달하는 국가들의 수 역시 증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즉 경제성 측면에서 태양광 발전 산업이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의미다.
수요 전망 ‘굿’, 수급 상황도 개선
산업계 입장에서 반길만한 소식은 태양광 발전과 관련된 전 밸류 체인에 걸쳐 수급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공급과잉은 폴리실리콘, 웨이퍼, 태양광 셀과 모듈 가격을 크게 떨어뜨렸다. 2011년 업계의 태양광 모듈 생산 능력은 53기가와트(GW)였지만 발전 수요는 27GW에 그쳤다. 공급이 수요를 두 배 가까이 초과하니 공장 가동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평균판매단가(ASP)도 크게 하락했다. 관계된 업체들은 적자로 허덕여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부 업체는 파산하거나, 인수합병(M&A)의 대상이 됐다.
사실 태양광 발전 수요는 각국의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과 맞물려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계속해왔다. 특히 원전사고와 대기오염 문제로 일본과 중국이 태양광 설비를 급격히 늘리면서 해당 지역은 유럽과 미국을 뛰어넘는 최대 태양광 수요 지역으로 떠올랐다. 적합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 자금도 태양광 분야로 급속하게 유입되고 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일조량은 풍부하나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소극적이었던 국가들도 최근 전력 접근성 제고 등의 이유로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태양광 업계의 제한적 증설과 견조한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올해 태양광 시장은 길고 길었던 불황의 터널을 뚫고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주요 태양광 업체들의 실적은 전년 대비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IH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태양광 발전 수요는 전년 대비 13.8% 증가한 44.1GW에 달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무려 30% 증가한 57GW의 신규 발전 수요가 기대된다는 것이 <IHS>의 전망이다. 전년 대비 태양광 발전 수요가 13GW나 늘어나면서 모듈, 셀, 웨이퍼, 폴리실리콘 등 전반적인 산업 밸류 체인에 온기가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예상되는 태양광 모듈의 ASP는 와트당 0.62달러로 전년 대비 가격 하락률은 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자릿수 가격 하락률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태양광 모듈의 연간 가격 하락률은 두 자릿수였다. 공급과잉이 시작됐던 2011년과 2012년 사이 모듈 가격 하락률은 무려 36%에 달했다. 가격 하락률이 한 자릿수로 둔화된다면 올해 주요 태양광 기업들의 실적 역시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올해 30%라는 고성장을 이루고 나면 2016년에는 성장률이 7.5%로 둔화돼 61GW의 수요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울러 2017년에는 일본과 영국, 미국 정부가 제공해왔던 세액공제 등 태양광 인센티브 제도가 축소되면서 –0.3%의 소폭 역성장이 예상된다. 물론 이 예상치에는 새롭게 진행될 수도 있는 각국의 지원 정책 영향은 제외돼 있으므로 사실상 플러스 성장일 가능성도 있다.
올해 지역별 태양광 발전 수요는 중국이 17.3GW로 가장 높고 일본이 10.4GW, 미국이 9.4GW로 그 뒤를 따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어 영국(3.5GW), 인도(2GW), 독일(2GW), 프랑스(1.2GW), 태국(1.1GW), 호주(0.9GW), 칠레(0.9GW) 순인 것으로 전망됐다.
중기 전망도 나쁘지 않다. <IHS>는 2019년 전 세계 태양광 발전 능력이 500기가와트(GW)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9년 세계 태양광 수요는 2014년 대비 64% 증가한 72GW 수준을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2019년에는 세계 11개국의 연평균 태양광 발전 수요가 1GW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요 변동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아울러 2019년까지 태양광 모듈 생산 가동률은 최대치를 기록했던 2010년 수준을 계속 상회할 것으로 관측됐다.
장기 전망도 좋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발간한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 2014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태양광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0년 전망치인 22%보다 상향된 수치다.
LG경제연구원 양성진 책임연구원은 “이 보고서는 지난해 유가하락이 급격히 진행되던 시기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며 “과거에는 유가가 급락하면 신재생에너지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이 같은 영향을 덜 받고 있다”고 말했다. <IHS>를 포함한 각종 조사업체의 자료를 보면, 저유가 기조와 각국의 보조금 축소에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태양광 시장은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수잔 폰 아이크베르거 IHS 태양광 부문 연구원은 “(업체들의 인수합병에 따른) 업계 재편으로 인해 태양광 시장은 수요자 중심이 아닌 차츰 공급자 위주로 흘러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도 각국 정부의 지원 정책과 무역 분쟁은 태양광 시장의 중요한 외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태양광 시장이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자생적으로 발전하려면 관련 산업계가 발전 효율을 보다 높이거나, 값을 떨어뜨리는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아직도 각 밸류 체인별로 많은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치열한 기술, 공급 경쟁을 펼치고 있으므로 완전한 공급자 위주의 시장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편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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