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취재수첩] 솜방망이 처벌, 개인정보 악용의 악순환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 기자] ‘사모님, 오피스텔이 좋은 조건으로 나왔습니다’. 자신을 김실장이라고 소개한 여직원은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았다는 듯이 친근하다. ‘내 전화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앙칼지게 따지지는 못했다. 이게 김실장이란 여자에게 따진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개인정보가 공공연하게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고객들의 정보보호 보다 기업의 수익 창출이 우선시되고 있다. 처벌을 받아도 솜방망이 수준이며, 이마저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많다. 알만한 대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들의
개인정보 관리 의식이 여전히 바닥이다. 고객 우선을 외치면서도 이용자 정보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3자에게 판매해 매출을 올리는 것이 다반사다. 추후 제재를 피하려면 1mm 글씨로 고지하면 그만이다.

경품행사에 응모한 고객 정보를 보험사에 팔아 231억7000만원의 영업수익을 거둔 홈플러스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3자 제공 동의에 대해 1mm 글자 크기로 응모권에 기재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홈플러스는 고객들에게 생년월일, 부모 동거 여부 및 자녀 수까지 요구했다.

사실상 사은행사를 가장한 개인정보 사업이라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었으나 동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죄는 없어지게 됐다. 사은행사에 동참한 고객 중 자신의 정보가 설마 보험사에 팔리게 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전에 3자 제공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롯데홈쇼핑은 2007년 7월부터 2014년 3월까지 3만여명의 고객정보를 동의 없이 손해보험사에 넘겼다. 이를 통한 매출액은 37억3600만원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롯데홈쇼핑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1억8000만원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불법을 감행하고 벌어들인 수익과 과징금을 비교해볼 때, 기업 입장에서 이는 분명 남는 장사다.

사실 롯데홈쇼핑은 제재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방통위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약 324만명의 고객 정보를 넘겼다. 이 중 동의를 받지 않은 고객수가 2만9000여명, 이 부분에 대해서만 법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기술적 결함과 관리자 실수에 따라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해명이다.

동의만 받는다면 기업들의 개인정보 장사는 묵인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동의’의 정의다. 꼼꼼하게 모든 약관과 고지사항을 다 살펴보는 고객은 흔치 않다. 수많은 조항 중 찾기 어렵게 끼워 넣은 3자 제공 부분을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나의 정보를 마음대로 판매하세요’라고 이해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를 진정한 동의로 고려할 수는 없다.

조치가 필요한 때다. 기업들의 고객정보 매매에 대해 이용자가 자각할 수 있는 시스템과 효과적인 제재안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점은 기업들의 윤리의식이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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