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현실 속 대두 모드’는 유쾌하지 않다
[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총싸움(FPS)게임의 주된 재미요소 중에 ‘대두(大頭) 모드’가 있다. 머리가 대단히 큰 캐릭터가 등장하는 콘텐츠다. 게임 내에서 이러한 캐릭터가 돌아다니는 모습만 봐도 유쾌해진다. 대두 모드는 ‘보는 재미에 하는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콘텐츠로 꼽힌다.
최근 들어선 게임 속 대두 모드가 현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산업 구조를 보면 머리가 점차 커지는 대신 허리는 극도로 얇아지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은 대형 게임업체 5곳을 의미하는 ‘빅5’라는 용어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이제 빅3 구도가 자리 잡았는데, 사실 빅3끼리도 상당한 덩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중견 게임업체는 한손에 꼽힐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중소 업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게임산업의 양극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까지 진행됐다. 연매출 1억원 미만(2015년 기준)인 회사 비중이 82%(726곳)라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결과도 있다. 유명 업체들이 매출 상위권을 독식하는 구글플레이 순위만 봐도 간접 체감할 수 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게임콘텐츠 생태계 진단과 발전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어김없이 게임산업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사실 수년전부터 제기된 지적이지만 이날은 상당수 토론회 참석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양극화를 언급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만큼 산업계 전문가들도 위기를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토론회에선 따끔한 자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게임업계가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했느냐’, ‘국내 퍼블리셔들이 국산 게임은 서비스하지 않고 중국 게임을 수입해오고 있다’, ‘정책이 완전한 자율규제로 전환하고 싶어도 업계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반론의 여지는 있지만 게임산업을 수년간 취재한 기자도 충분히 수긍할만한 발언들이다.
“게임은 상품이기에 앞서 문화이고 예술이다”라는 곱씹어볼만한 발언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게임산업은 문화와 예술을 언급하기가 민망할 만큼 상품화가 진행되지 않았나 싶다. 무료 서비스 대신 게임 속에서 아이템을 판매하는 부분유료화 수익모델을 과용하게 되면서 게임이 사업에 휘둘리게 된 것이 그 이유다.
국내 게임산업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넥슨의 정상원 신규개발총괄 부사장도 최근 기자와 인터뷰를 통해 “게임 그 자체의 작품성보다 얼마나 사업적으로 잘 됐는지가 부각됐다”며 솔직한 발언을 했다.
지금부터 게임업계와 정부가 방향 설정을 잘해야 한다고 본다. 선발 업체들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생태계 선순환을 고민해야 할 때다. 양극화 해소 대책도 시급하다. 이 부분은 정부가 좀 더 힘을 써야 한다.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느 누구라도 머리만 남아있는 산업 구조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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