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SW’로 달리는 자동차의 미래는?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국내 CF 카피중 전설로 꼽히는 것중 하나다. ‘다음중 가구가 아닌 것을 고르라’는 초등학교 시험 문제에 아이들이 정말로 침대를 선택하는 바람에 해당 가구회사가 곤혹을 치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침대는 가구로 분류되지만 일반인이 생각하는 가구의 기준은 당시보다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인체공학을 고려한 과학 기술이 얼마나 부여됐느냐에 따라 이제 가구의 가격이 결정된다.
또한 앞으로 가구는 IoT(사물인터넷) 기술과 결합돼 헬스케어 플랫폼이 되거나, 은밀할 사생활이 보장되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도 창조적 변신이 충분히 가능하다. 평균 하루에 6~7시간 머무르는 침대만큼 창의력이 역동적으로 발휘될만한 라이프 플랫폼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사물의 본질적 가치가 소프트웨어(SW)에 의해 크게 변화되는 현상이 최근 각 산업분야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 더 이상 자동차는 ‘탈 것(운송기구)이 아니라 SW’라는 정의가 더 어울리게 됐다.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대세로 떠오른 자율주행차는 결과적으로 오픈소스 SW의 가치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자동차에는 SW가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오픈소스는 자동차의 빠른 혁신과 신뢰성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픈소스 SW는 내비게이션이나 미디어, 모바일 폰 지원 등 다양한 기능 측면에서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최근 LG전자가 부회장사로 선출되며 주목받은 ‘제니비 얼라이언스(연합)’이 대표적이다. 제니비는 지난 2009년 런칭한 차량 내장용 인포테인먼트 기기(IVI) 분야 오픈소스 프레임워크 표준단체다.
제니비 연합은 리눅스 기반 IVI용 플랫폼 ‘제니비 플랫폼’을 관리한다. 현재 BMW와 GM, 인텔, 델파이 등 완성차 및 부품, IT 업체 150여개가 활동 중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이사회에 입성한 후 1년 만에 임원사가 됐다.
제니비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통해 자동차 제조업체는 차량 내 제공되는 기능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고, 비용 절감이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 자사 제품을 차별화하는데 주력할 수 있다.
또, 지난달 말 일본의 토요타는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오토모티브 그레이드 리눅스(AGL)’를 탑재한 2018년형 캠리 모델을 미국 시장에 선보인다고 밝혔다. AGL은 리눅스 재단이 제공하는 자동차용 오픈소스 리눅스 프로젝트다.
AGL은 일본 업체들에 치우쳐진 플랫폼이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이미 100개 이상의 회원사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리눅스 기반 OS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코드를 기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한 대에는 1억개 이상의 코드가 필요한데, 이같은 표준화된 오픈 플랫폼을 통해 자율주행이나 커넥티드 카 관련한 SW를 쉽게 개발할 수 있다.
현재 차량 엔진, 변속기, 에어백, 잠김 방지 브레이크 및 크루즈 컨트롤(정속 주행장치) 등은 모두 ‘CAN 버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연결되는데, 이 프로토콜은 차량의 백본 네트워크에 전원을 공급한다. 인터넷을 지원하는 HTTP 프로토콜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은 CAN 버스 상단에 구축돼 자율주행차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구현할 수 있다.
폴리싱크(PolySync)라는 업체는 이를 통해 일반 차량을 자율주행차량으로 변환하는 오픈소스 자동차 제어 프로제트를 개발했다. 조지 호츠(George Hotz)는 테슬라의 자동조종장치에 대한 대안을 오픈소스로 공개한 바 있다.
오픈소스 로봇 운영체제인 ROS는 자동차 회사의 연구개발(R&D) 팀이 신속하게 자율 차량 개발이나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지난해에는 센싱이나 액추에이션, 통신 등의 표준을 표준화하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프로젝트인 ‘H-ROS’도 발표됐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자동차 오픈소스 프로젝트 중 하나는 OS비히클(OSVehicle)이다. OS비히클은 신생 기업이 보다 쉽게 맞춤형 전기 자동차 및 운송 서비스를 디자인 및 설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 자동차 업체 르노는 올해 초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모토쇼에서 OS비히클 기반으로 한 오픈소스 전기자동차 플랫폼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외부 업체들이 전기자동차에 탑재된 SW를 복제·수정해 다양한 자동차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르노는 ARM 호환칩과 오픈소스 차량 OS인 POM(Platform Open Mind)를 탑재한 전기차를 소개했다. POM은 자사의 소형차인 트위지 모델에 적용됐다.
OS비히클은 이외에도 비지비(BusyBee)와 팹카(FabCar), 첨단 소재로 만들어진 이탈리아 브랜드 SAP의 럭셔리 전기차 등에도 적용됐다.
현대의 인터넷 인프라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오픈소스 SW의 활용으로 완전히 변화했다. 이를 통해 독점체계가 무너지고 웹사이트를 보다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콘텐츠 관리 시스템 역시 이를 통해 ‘콘텐츠’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으며, 결과적으로 놀라운 웹 사이트, 앱 및 도구가 온라인에 확산되는 것을 목격했다.
자동차 산업 역시 향후 10년 동안 인터넷 산업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인포테인먼트나 자율주행시스템, 차량 설계에 국한되지 않고, 차량의 모든 측면을 향상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기업은 혁신을 더 빠르게 추진할 것이고, 새로운 서비스와 경험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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