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칼럼

[취재수첩] '스크래핑의 마술'...언제까지 허용될까

이상일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핀테크 시대에 살며 우리의 금융생활이 편해진 것이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금융상품을 신청하거나 대출을 받을 때, 또는 보험금을 청구할 때 일일이 금융기관이 요구하는 서류를 떼어다 제출해야 한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나의 금융정보를 조회하는데도 관공서에서 필요한 서류를 떼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모로 개인의 정보를 조회하는데 부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시대가 불과 몇 년 전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는 버튼 한번으로 나와 관련된 정보를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이 알아서 가져가고 취합하는 서비스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가입된 보험이 몇 개인지 알기 위해 일일이 각 보험사 홈페이지에 가입, 뒤져보지 않아도 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스크래핑’이라 부르는 기술 때문이다. 스크래핑 기술로 인해 금융고객은 번거로운 수고를 덜어낼 수 있었고 금융사들은 서비스 편의성 개선은 물론 업무 자동화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스크래핑은 간단히 웹사이트에 보이는 정보를 추출해 제공하는 기술이다. 시중은행의 인터넷뱅킹, 홈택스나 민원24 같은 공공기관 웹사이트, 그 외 다수의 문서를 스크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크래핑은 일반 사용자가 직접 웹사이트에 접속하고 조회하는 과정을 자동화한 것으로 스크래핑을 이용하는 기업이나 금융사가 정보제공 기관의 특별한 전산시스템에 별도 연결하거나 정보를 제공 받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마법의 기술’로 일컬어지는 스크래핑이지만 제한도 있다. 우선 기술적으로 정보제공 기관에서 해당 웹사이트를 접속을 차단한 경우(정기 점검, 오류 등의 서비스 불능)에는 일반 사용자는 해당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없으며 스크래핑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아직 실제 사례가 나오지 않았지만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다. 사실 이 점이 스크래핑을 이용한 핀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최근의 핀테크 서비스들은 특정 금융사와 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다수의 금융사의 정보에 기초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정보는 모여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금융서비스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다.

하지만 특정 금융사가 스크래핑을 통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가져가는 것을 막으면 이를 이용하는 서비스는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핀테크 업체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고 금융사들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아직은 절묘한 ‘균형의 추’가 작용하고 있다. 금융사 입장에선 스크래핑 서비스를 이용해 현재 스타트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재화하려는 욕심이 있다. 스크래핑 기술 자체가 기술장벽이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중간에 서비스 사업자를 끼지 않고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사가 주도적으로 스크래핑 기술을 활용할 경우 균형의 추가 깨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A금융사가 B금융사의 고객가입 정보 등을 스크래핑을 통해 가져간다고 하면 이에 대해 B금융사가 느끼는 저항감은 상당할 것이다. 실제 한 금융사는 스크래핑을 통한 서비스 내재화를 꾀하다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다.

핀테크 스타트업들도 언제까지 금융사들이 스크래핑을 허용할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들이 스크래핑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지만 이 시장이 커질수록 금융사들의 관심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중간자로서의 위치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최근 하나은행과 SK텔레콤이 출범시킨 '핀크' 역시 이러한 중간자로서의 위치를 이용하고자 탄생했다. 핀크는 금융정보 중개 서비스를 지향하면서 합작사를 만든 이유를 특정 금융사가 정보 중개 서비스를 하는 것에 기존 시장의 저항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앞으로도 금융 서비스는 기존 플레이어의 저항감을 최소화하는 지점에서 혁신을 꾀하는 경우가 많아질 듯 하다. 다만 이러한 위치는 자의적이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인 경우가 많다. 핀테크가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여전히 금융사가 허락(?)해준 틈새 안에서 존재하는 분위기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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