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한글과컴퓨터와 HWP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최근 정부 청원에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문서의 한글(HWP) 독점을 금지해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 시작은 지난달 28일 한 스타트업 대표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이 청원은 3월 14일 기준 3578명의 동의를 얻었다.

그는 청원에서 “정부관련 문서는 모두 HWP로 돼 있는데, 왜 특정회사 제품을 독점적으로 사용해 전 국민이 그걸 사용하도록 강제화하냐”며 “웹 페이지만으로도 충분히 자료 입력과 조회가 가능하며, PDF로도 문서는 충분히 전달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HWP만으로 모든 문서를 강제화 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볼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HWP만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행태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HWP 구매와 설치에 드는 시간과 비용 문제도 지적했다.

이 청원 외에도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해부터 약 5건의 비슷한 내용이 올라와 있다. 내용은 비슷하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공기관 배포 문서를 PDF나 DOC포맷으로도 제공해달라는 내용이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한 대학교수는 “중국에선 한글을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며 “국산 소프트웨어(SW)를 아끼고 키워주자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한글’로 작성된 문서 그대로 외국친구나 학술단체에 보낼 수 없으며 이는 국제화, 세계화 추세에 맞지 않다”고 청원을 올렸다.

회사에서 자녀의 학교 홈페이지를 이용해 공지사항 등 학교 관련 소식을 찾아보는데 일반기업들은 대부분 한글SW를 사용하지 않고 보안 때문에 뷰어 설치마저 어렵다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HWP는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SW) 기업인 한글과컴퓨터에서 만든 한컴오피스 한글(구, 아래아 한글)의 기본 문서 규격이다. 지난 1990년 설립된 한글과컴퓨터는 국내 SW업계의 자랑으로 평가받았다. 자국 SW 산업 보호 등을 위해 정부는 앞장서서 HWP 문서를 표준으로 삼았다.

1998년 한글과컴퓨터가 경영위기에 직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한글815’ 특별판은 무려 60만 카피 이상이 팔려나가며 국민의 열띤 지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20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2010년 현 김상철 회장이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한 후, 모바일, 웹, 클라우드 기반으로 오피스 제품을 다각화한 것은 물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종합 ICT’ 그룹으로 변모했다. 2014년 임베디드 SW업체인 MDS테크놀로지(현, 한컴MDS)를 비롯해 최근 인수한 개인안정장비업체 ‘산청’ 등을 통해 로봇, 스마트시티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물론 한컴오피스는 한글과컴퓨터의 대표 제품이다. 오는 4월에는 SW서비스(SaaS) 개념으로 제공되는 ‘한컴오피스 네오2’의 출시도 예정돼 있다.

그러나 이번 공공기관 HWP 독점 금지 청원에서 볼 수 있듯, 한컴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기업들에게 정품 사용 확인을 요구하는 공문을 무작위로 보내며 원성을 산 바 있다.

한컴 측은 “정품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관련 내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퍼지기도 했다.

결국 HWP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표준 SW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이같은 구태는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청원의 내용처럼 정보를 개방하고 소통함으로써 공익성과 업무효율성,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방향성에 맞게 문서 포맷도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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