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슈퍼컴퓨터 도입 30년 발전사
-내달 3일 KISTI 슈퍼컴 5호기 ‘누리온’ 가동, 개인용 PC 2만대 규모 성능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올해는 국가 차원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한지 30년째 되는 해다. 국가기관 가운데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곳은 한국과학기술정보원구원(KISTI)이다. KISTI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처음으로 슈퍼컴퓨터를 도입, 가동하기 시작했다.
KISTI만큼 큰 규모의 슈퍼컴퓨터를 운영하고 있는 기상청은 이보다 11년 늦은 1999년 도입, 2000년부터 1호기를 가동했다.
KISTI는 1988년 1호기를 시작으로 거의 매 5~8년마다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있다. 오는 12월 3일에는 1호기보다 무려 1300만배 성능이 높은 5호기의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5번의 슈퍼컴퓨터 도입 가운데 3번이 크레이사의 기종을 사용했다.
이번 5호기도 크레이사의 CS500 기종으로 구축됐다. 5호기의 이름은 ‘누리온’이다. 국민 공모를 통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슈퍼컴의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30년 전 첫 슈퍼컴은 어떤 모습?
누리온은 세계에서 11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로 25.7페타플롭스 성능을 자랑한다. 플롭스(Flops)는 하는 것은 슈퍼컴퓨터의 계산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1초에 덧셈·뺄셈·곱셈·나눗셈 등의 연산을 몇 번 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페타가 붙었으니, 1플롭스보다 1000조배 빠른 연산이 가능한 수치다. 25.7페타플롭스는 초당 2경5700조번 연산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KISTI는 “25.7페타플롭스는 70억명이 40년 동안 할 계산을 1시간 안에 마칠 수 있는 성능”이라고 설명했다. 더 쉽게 생각하면 개인용 PC 2만대 성능에 해당한다. 이전 세대 슈퍼컴 4호기보다 80배 향상된 것이며, 1호기보다는 무려 1300만배나 빠른 성능이다.
그렇다면 30년 전으로 돌아와 1988년에 처음 도입된 슈퍼컴퓨터 1호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 올림픽 개최 시기와 맞물려 도입된 1호기는 크레이-2S 시스템으로, 당시 구입가는 2400만 달러(한화로 약 273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1호기의 최고성능이 2기가플롭스(Gflops, 1초에 20억회 연산 가능), 장착된 CPU 수는 4개, 메모리는 1GB, 디스크 용량 60GB에 불과했다. 그러니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PC의 성능에도 못 미치던 수준이다.
하지만 1호기 덕분에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기상예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작됐고 국산 자동차의 설계와 제작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적용됐다. 한국형 원자로의 안전성 검증에도 슈퍼컴퓨터가 활용되는 등 다양한 첨단연구가 가능해졌다.
◆김치냉장고 신제품 출시 앞당긴 것도 슈퍼컴
임무를 마치고 5년 후인 1993년 10월에 퇴역하게 된 슈퍼컴 1호기는 당시 무게만 2톤이 넘었으며, 현재 KISTI의 건물 모형은 이 슈퍼컴 1호기를 본 따 만든 것이다.
1호기 퇴역과 함께 1993년 11월 구축된 슈퍼컴 2호기 역시 크레이사의 C90 시스템이었다. 이론 최고성능은 1호기보다 8배 향상된 16Gflops로, 탑재된 CPU 개수는 역시 4배 증가한 16개에 달했다. 약 8년 가량 사용된 슈퍼컴 2호기의 구입가는 3685만달러(한화로 약 420억원)였으며,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어 2001년 6월과 2002년 1월에 걸쳐 두차례 도입된 슈퍼컴 3호기는 IBM의 p690와 NEC SX-5/SX-6 시스템이었다. 메인 시스템은 IBM p690(유닉스 서버)로 당시 이론 성능은 2호기에 비해 대폭 늘어난 4.3테라플롭스(Tflops)에 달했다. 탑재된 CPU 숫자 역시 2호기에 비해 42배나 증가한 672개였으며 구입가는 3000만달러(한화로 약 342억원)였다.
3호기를 기점으로 슈퍼컴퓨팅을 활용한 첨단 연구성과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위니아만도의 김치냉장고인 ‘딤채’의 신제품 개발도 3호기를 통해 앞당길 수 있었다. 위니아만도는 코일의 위치에 따른 냉장고 효율성을 실험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슈퍼컴 3호기를 통해 돌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예정보다 빠른 제품 출시가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4호기 도입이 결정된 이후 3호기는 광주과기원과 부경대 등 대학 및 연구소에 무상 기증됐다.
슈퍼컴퓨터 4호기는 2007년부터 3년 간 총 6100만달러(한화로 약 700억원) 금액이 투자돼 2010년 11월 구축됐다. 3호기에 비해 1000배 가량 성능이 높아진 324테라플롭스(1초에 324조번의 연산 처리 가능)를 기록했다. 4호기는 우주생성원리, 중력파, 분자모델링, 나노소재개발 같은 거대연구의 발전을 이끌었고, 특히 중소기업 신제품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지원했다.
이후 8년 후 도입된 슈퍼컴퓨터 5호기는 어떤 모습일까.
◆우주 기원 밝히고 AI 기술 개발…5호기 임무는?
우선 57만20개의 코어가 탑재됐고 33.88페타바이트의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규모로 구성됐다. 특히 인텔의 다중코어 프로세서(가속기)인 제온파이 나이츠랜딩 8300대가 계산노드로 장착됐고 앞에서도 언급했듯 25.7페타플롭스의 시스템 성능을 기록하며 지난 6월 발표된 ‘전세계 500대 슈퍼컴퓨터 리스트’에서 11위에 롤랐다. 446제곱미터의 면적에 구축됐으며, 무게만 무려 133톤이다.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열을 시키기 위해 매일 1237만3920리터의 냉수가 사용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슈퍼커퓨터 5호기가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이다. KISTI 측은 5호기가 지진해석 및 예측이나 가상원자로기술, 가상우주발사체, 가상세포모델링 등 다양한 분야의 난제를 해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기초 연구나 수천억개에 달하는 세포 간 연결 등 거대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국가, 사회 현안을 해결하고 제조업 기술혁신을 이끌기 위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빅데이터 분석에도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희윤 KISTI 원장은 “지난 30년간 국가 슈퍼컴퓨터는 우리 연구자들이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뛰어난 연구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했다”며 “복잡한 과학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이 신제품 개발기간과 개발비용을 1/5 수준으로 줄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서른 살, 이립(而立)의 국가 슈퍼컴퓨팅이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 5호기라는 새로운 도구를 갖게 됐다”며 “30년이라는 긴 도움닫기를 끝내고, 높고 강한 도약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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