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록 SK하이닉스 CIO, “ERP 전환은 디지털 혁신 시작점”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SK하이닉스는 지난 2월 기업의 핵심시스템인 전사적자원관리(ERP)의 SAP S/4 HANA 전환을 완료했다. 이후 3차례 결산을 통해 성공적인 전환을 확인했다. S/4 HANA는 인메모리 기반의 차세대 ERP 솔루션으로 클라우드 형태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하드디스크가 아닌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구조이다보니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효율적이다. 기존에 15일 걸리던 시뮬레이션 작업이 2시간 이내로 줄었다. 이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실시간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선 SK하이닉스에게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메모리를 활용한 ERP는 결국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자사 제품을 이용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만난 송창록 SK하이닉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담당(CIO)<사진>는 “S/4 HANA로의 전환은 현재 추진 중인 디지털 혁신의 시작점”이라며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클라우드가 가능한 ERP 구축이 중요했다”며 차세대 ERP 전환 배경을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진행됐다.
SK하이닉스는 국내 대기업 핵심 계열사 가운데서도 선도적으로 S/4HANA 전환을 결정하며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송 전무에 따르면, ERP 전환 이후 빠른 컴퓨팅 파워로 인해 쿼리 처리 속도는 60배 이상 빨라졌고, 시뮬레이션 결과 값도 기존 15일 걸리던 것에서 2시간이면 알 수 있게 됐다. 환율 등에 따른 메모리 가격 결정이나 반도체 수율을 높이기 위한 제품 배합 등 수시로 진행하는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하루 이틀이면 돌릴 수 있어 의사결정도 빨라졌다. IT인력이 정부의 주52시간 근무 시행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덤이다.
송 담당은 “늘어나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면서 오는 2023년경이면 회사 규모가 현재의 2배가 되고, 해외기업 인수도 많아져 IT측면에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며 “특히 ERP와 같은 큰 시스템의 경우 지금 안 바꾸면 앞으로도 절대 못 바꿀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의 반도체 공장 확충을 비롯해 지난해 말에는 충북 청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M15)을 완공했으며, 오는 2022년부터는 경기도 용인에 10년 간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라인 4개를 지어 증가하는 낸드플래시 수요에 대응할 예정이다.
그는 “당장은 반도체 공장이 국가산업기밀보호법 등의 저촉을 받아서 퍼블릭 클라우드를 사용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클라우드 적용이 가능한 ERP 및 아키텍처를 준비해 때가 되면 곧바로 전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강조했다.
이미 클라우드 버전의 S/4 HANA은 현재 국내 법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 자회사 등에 적용해 이번에 구축된 중앙의 ERP와 쉽게 연계되도록 했다. 일부 한곳의 해외 법인에 클라우드 버전을 적용했다. 향후 인수기업 등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ERP 전환 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송 담당은 “ERP 전환을 결정하고 나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다운타임(시스템이 중단되는 시간)를 최소화시키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빠른 원자재 부품 교체 주기가 6시간인데, 적어도 6시간 이내 ERP 전환이 이뤄져 시스템이 정상 작동해야 했다. 자칫 잘못되기라도 하면 전세계 D램 가격 상승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리스크가 컸다.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다운타임 시간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갔다. 처음에는 열댓 시간 걸리던 것이 목표였던 4~5시간으로 줄었다. 시스템 가동시간 막판까지 최대한 많은 작업을 하고 마지막에 들어오는 데이터만 업데이트시켜 최신 ERP 시스템으로 보내게 했다.
배석한 송지영 SAP코리아 전략사업부문 본부장은 “독일 SAP 본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SAP 시스템 환경 최적화(SLO) 서비스를 적용해 다운타임을 최소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며 “S/4 HANA 전환 전 불필요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최소의 데이터만 마이그레이션했다”고 설명했다. 약 8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메모리 상의 데이터 압축 기술을 통해 1.2TB로 줄일수 있었다.
이와 함께 SK하이닉스는 현재 마스터 데이터(기준정보) 교체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역시 SAP의 MDG(마스터 데이터 거버넌스)’를 적용했다. 작업이 완료되면 회사의 정보와 업무 체계가 표준화돼 데이터 간 연결성이 투명해진다. 보통 마스터 데이터 교체는 ERP 전환 전에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오히려 이를 반대로 진행했다.
송 담당은 “현재 자재·설비·제품·장비·공정·공급·수요·품질 등 카테고리가 다양한데, 이를 동시에 바꾸는 것은 어려워 순차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데이터 정합성이 중요해 약 3~5년이 걸리는 작업인데, 이를 바꾸고 ERP를 교체하는 것보다 ERP를 먼저 현대화한 이후 마스터 데이터를 바꾸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웃음지었다.
이를 통해 향후에는 컨테이너 기반의 마이크로서비스, 머신러닝,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클라우드 아키텍처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내부 개발자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클라우드 플랫폼(PaaS)으로 만들 계획이다. 인프라 측면에선 공장의 IT시스템은 엣지, 중앙의 데이터 허브는 클라우드로 만드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형태다. 향후에는 3만명의 SK하이닉스 인력이 모두 ‘시티즌 데이터 과학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는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하는 PaaS 플랫폼은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 쓰기가 쉽지 않다”며 “마치 카시오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현업에 있는 인력들이 워크플레이스 플랫폼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바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디지털 혁신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천=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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