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취재수첩] 국감의 품격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국정감사가 지난 2일과 4일 열렸다. 각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를 대상으로 한 20대 국회의 올해 첫 국감이었다.

이번 과방위 국감은 모 야당 국회의원의 한마디로 요약해주고 싶다. 방통위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를 수차례 다그치던 말이다. “‘예스’냐, ‘노’냐, 그것만 말하세요”, “길게 설명하지 마시고”, “자, 예스 올 노(Yes or No)!”

해당 의원은 보수 유튜버들이 이유 없이 ‘노란 딱지’(콘텐츠 광고 제한)를 받고 있다며 정부와 여당의 겁박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캐물었다. 증인이 조금이라도 길게 대답하려고 하면 말꼬리를 끊고 망신을 주기 일쑤였다.

보기가 민망했다. 이날 존 리 대표가 시종일관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이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 태도다. 달리 보면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말하라는 식이다. 심도 있는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 굳이 보고 싶지 않은 ‘떼쓰기’였다.

어떤 의원은 증인으로 참석한 통신3사 임원진을 세워놓고 지역구 민심을 들려주겠다며 한참을 혼을 냈다. 두 번씩 일으켜 세우고 앉히기도 예사였다. “일어나보세요”, “앉으세요”, “다시 일어나보세요.” 흡사 교무실에 앉아 있는 선생과 면박당하는 학생의 모습이 연출됐다.

올해도 기업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국감 갑질이 여전하다. 과방위는 이번 국감에서 기업 증인을 대폭 줄이고 실무 책임자 중심으로 증인‧참고인을 꾸렸다고 했다. 마구잡이식 난타 질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기대한 대목이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대개 준비가 부족한 국회의원일수록 호통을 잘 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정책 질의는 실종됐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현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데 질문 기회 대부분을 할애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의혹과 가짜뉴스 논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물론 연구윤리와 허위조작정보 유통에 관해 충분히 질의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치자. 하지만 과방위가 할 일이 이것만 있지는 않다. ICT 분야 산적한 현안들이 차고도 넘친다. 국민의 목소리로 포장했지만 실은 당리당략에 따른 공세만 계속됐다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로잔 토마스의 기업경영서 ‘태도의 품격’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프로의 세계에서 ‘태도’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차분하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증인들이 진짜 무서워하는 태도다.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국감은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다행히 과방위의 국감 일정이 아직 많이 남았다. 과기정통부 산하 출연연구기관들과 공공기관들이 대상이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에 대한 종합감사도 마무리해야 한다. 만회할 기회가 있다. 품위 있게, 정책을 논하는 자리를 기대한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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