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OTT 시대 통신사 역할은?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바야흐로 온라인동영상(OTT) 전성시대다. 워낙 낮은 유료방송 요금 때문에 한국은 OTT가 뿌리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됐지만 이제는 방송사나 통신사 모두 OTT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몇 년 전 OTT 관련 토론회가 생각난다. 당시 지상파 방송사의 한 간부는 “넷플릭스가 아니라 넷플릭스 할아비가 와도 한국에선 안된다”고 했다. 넷플릭스의 최대 강점인 가격경쟁력이 한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여기에 드라마 등 부족한 한국 콘텐츠를 감안할 때 넷플릭스는 제한된 선택만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절반은 OTT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주력 시청매체로 부상한 것이다. 여전히 넷플릭스는 (한국이용자 입장에서) 저렴하지 않고 한국 콘텐츠도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거실 TV를 대체하면서 OTT 이용률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 시장은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사업자가 주도하고 있다.

OTT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급부상하면서 국내 사업자들도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다. 특히, 통신3사는 각자의 전략으로 OTT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2016년 CJ헬로 합병을 추진했던 SK텔레콤은 쓴 맛을 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퇴짜를 놨지만 CJ ENM과의 협력을 우려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일방적인 반대도 한 몫 했다. SK텔레콤에게 지상파는 악연이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유튜브, 넷플릭스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의 손을 잡았다. 국내 유료방송 1위 KT는 시즌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OTT 사업을 시작했다. LG유플러스는 별도의 OTT 서비스를 내놓는 대신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OTT 춘추전국시대에서 통신사들의 시장 참여는 환영할 만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예측 불가능한 콘텐츠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꾸준한 투자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광고 매출 감소로 곡소리 나는 방송사들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재원이 풍부한 통신사들의 시장참여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꾸준한 투자가 이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통신사들의 인식 변화다. OTT의 성공은 품질 좋은 네트워크가 아니라 차별화된 콘텐츠에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모바일IPTV의 연장선, 또는 넷플릭스와 손잡은 LG유플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어서는 곤란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도 있다. 통신사가 콘텐츠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조성이다.

통신사들은 불투명한 사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집행해본 경험이 없다. IPTV가 출범할 때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10년간 변변한 오리지널 콘텐츠 하나 없었다. 그들이 약속했던 투자는 넷플릭스처럼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닌 셋톱박스나 네트워크, 심지어는 외부 콘텐츠 수급이 대부분이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지난해, 올해 초 유료방송 M&A에 성공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순수한 콘텐츠 제작규모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M&A라는 빅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콘텐츠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이나 정부가 국민에 대한 통신사의 기여도를 요금인하에서만 찾으면 이 같은 투자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귀신같이 매출과 이익을 맞추는 통신사들이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콘텐츠 투자보다는 네트워크 투자, 마케팅 비용 집행이 우선이다. 콘텐츠는 꾸준히 투자해야 성공을 맛볼 수 있다. 통신사들도 콘텐츠로 실제 성공을 경험해봐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이 거실에 오순도순 모여 TV를 시청하는 풍경은 점점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디어 시장은 앞으로도 빠르게 변화할 것이고, OTT 이후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해 시장에 충격을 안길 수도 있다. 그 무엇이 됐든 미디어 시장의 핵심은 콘텐츠 경쟁력이고 그 경쟁력을 가지려면 실패를 넘어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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