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5G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5G 망 공사현장 점검에 나섰다. 지하철 운행시간을 감안하면 공사는 새벽에 진행될 수 밖에 없다. 현재 통신3사는 전국 649개 지하철 역사 가운데 약 절반인 325개 역사에 5G 망을 구축했다. 조만간 전국 지하철에서도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5G가 갈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지하철 망 구축은 실내 5G 구축의 시발점일 뿐이다. 사무실, 집안 등에서 원활히 5G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여전히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세계최초 5G 서비스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초고속, 초저지연 등 5G만의 장점을 체감하기에는 콘텐츠가 부족하고, 고가의 단말기도 한 몫했다. 무엇보다 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실내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고 야외에서도 수시로 LTE로 전환되기 일쑤였다.

얼핏 보면 망 구축 속도가 더딘 것 같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서비스 첫해에 전국 방방곳곳에서 새로운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3G도, LTE도 안착하는데 수년이 소요됐다.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한꺼번에 감당할 수 있는 통신사는 없다. 가뜩이나 우리는 5G 세계 최초 서비스를 위해 통신장비, 단말기 등 관련 생태계가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더 많은 비용과 수고를 수반하고 있다.

정부는 계속해서 통신사들에게 5G 망 조기 구축을 독려하고 있다. 디지털뉴딜의 실현을 비롯해 ICT 생태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네트워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통신사 CEO들을 만나 디지털뉴딜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디지털뉴딜에서 통신사들이 맡은 영역은 적극적인 5G 투자이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도 최근 통신3사 CEO들을 만나 5G 기반 데이터 고속도로 구축방안을 논의했다.

통신사들은 2022년까지 3년간 유‧무선 통신인프라 등에 약 24조5000억~25조7000억원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화답했다. ICT 산업의 인프라 조성과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경제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로 경기회복을 견인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정부가 통신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5G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초 통신3사에 단말기유통법을 위반했다며 법 시행 이후 역대 최대인 51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법 위반을 용인하고 징계를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과거 보조금 전쟁은 타사 가입자 유치를 위해 불필요한 소모전 양상이었지만 이번에는 자사 3G, 4G 가입자의 5G 업그레이드에 초점이 맞춰졌다. 네트워크도 부족하고 요금수준도 올라간 상황에서 통신사들이 소비자에게 소구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단말기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역대 최대 과징금이었다.

과기정통부도 통신사에 적극적인 5G 투자를 요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통신요금 인하 및 개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초 과기정통부는 20대 국회 때 폐기된 보편요금제 도입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표면적 이유는 폐기된 법안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것이었지만 국회 논의를 통해 5G 요금 수준을 정할 때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여기에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이 통신사 대표들을 만나 5G 투자를 요청하는 한편, 요금인하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5G 투자독려와 역대 최대 과징금, 요금인하 요구 등은 한 바구니에서 논의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국가 전체로는 디지털뉴딜의 성공이 최우선 과제이고, 과기정통부 측면에선 5G 전국망 구축을 통한 진화된 ICT 생태계 구현이다.

통신사는 5G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정부도 5G를 통해 디지털뉴딜의 성공을 이끌어내야 한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할 때다. 통신사들이 과도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통신사들에게 힘을 실어줄 때지 규제권한을 앞세워 더 많은 의무를 지울때가 아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채수웅
woong@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