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언택트 시대의 그림자, 택배노동자 과로사…IT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최근 과로사, 극단적인 선택 등 택배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택배 노동자들의 대한 노동 강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내달중 관련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 중심의 생활 방식으로 인해 택배 물량이 급증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물류 체인에 연쇄적인 충격이 가해지고, 결국 물류 노동자에게도 그 여파가 미칠것이란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이 부분까지 세심하게 보살피지못했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택배노동자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 포털에 간혹 ‘자기가 원해서 선택한 일인데 힘들면 다른 일 찾으면되지 어쨌든 노동자는 다 힘들다’는 매정한 댓글도 달린다.

하지만 그런 매정한 반응조차 이제는 보다 진화된 사회 시스템으로 수용해야하는 시대다.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까지나 '고맙습니다. OOO 여러분' 이런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 강도를 완화시켜주는 IT 활용...양자컴퓨터는 어떨까

‘모든 기술은 인간을 향한다’는 모 기업의 이미지 광고 카피처럼, 휴머니즘 측면에서 IT를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IT최근 택배 노동자들의 잇단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외곽 가와사키에 위치한 후지쯔연구소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후지쯔는 이곳에서 2018년에 개발한 '디지털 어닐러'(Digital Annealer)로 명명된 자사의 양자컴퓨팅 기술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사의 양자컴퓨터는 단순히 계산을 빨리하는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군에서 '최적의 조합' 또는 '최적의 상황'(Optimization)을 찾아내기위해 설계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참고로 '어닐러'는 금속제조분야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금속을 가열한뒤 서서히 식히는 과정에서 금속의 조직이 최적화된 상태에 도달하도록 하는 어닐링 공법이 있다.
슈퍼컴에 탑재되는 전용 보드 <사진: 후지쯔>
슈퍼컴에 탑재되는 전용 보드 <사진: 후지쯔>

후지쯔 연구원의 설명이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갔지만 기존 슈퍼컴과 뭐가 다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후지쯔는 디지털 어닐러의 활용 목적을 이해하기 쉽게 하도록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세일즈맨(영업사원)의 출장 사례다.

만약 세일즈맨이 여러 도시를 방문하고 나서 원래의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정할 때, 어느 순서로 동선을 짜는 것이 세일즈맨의 출장 거리를 최적화할 수 있겠는 가를 계산한다. (물론 이 사례는 영업 사원의 노동 강도를 완화시키기위한 목적 보다는 회사의 출장 비용을 최적화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위한 차원에서 소개된 것이다.)

예를들어 기존의 컴퓨터 계산으로는 영업사원이 5개 도시를 방문할 경우, 동선의 경우의 수는 120개 조합이 나온다. 그런데 도시의 수가 30개로 증가하면 이같은 경우의 수는 무한대로 확장돼버려 계산이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이는 계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를 계산할 만한 마땅한 컴퓨팅 파워(Computing Power)가 없기때문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와 같은 계산능력이 탁월한 컴퓨팅 파워를 장착하면 이같은 복잡한 조합이라도 최적의 동선을 도출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획기적인 계산 능력을 보이는 것은, 양자 역학에서 0과1이 따로 존재하지않고 0과 1을 동시에 가지는 '중첩'(큐비트)되는 현상을 이용해 동시에 계산하기 때문이다. 기존 컴퓨터로 몇십년이 걸리는 계산을 불과 몇 초 만에 수행한다.

◆최적의 '택배 이동 동선'을 찾아줄 수 있다면...

만약 매일 수십~수백개의 택배물건을 배달해야하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이같은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최적의 배달 동선 조합을 제시해준다면, 노동의 강도는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마찬가지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국 집배원에도 동일하게 활용될 수 있다. 물론 택배 기사들의 주된 업무는 배달뿐만 아니라 '까대기'라고하는 물품 분류작업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미 IBM, 구글, 후지쯔를 비롯한 여러 글로벌 IT기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양자컴퓨팅 기술을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양자컴퓨팅 기술은 초기 단계다.

현재 산업용으로 활용되는 양자컴퓨팅 기술은 연구소 등 초고속 연산이 필요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데 향후 금융상품 개발, 의료 및 제약, 화학, 유통및 물류산업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다만 개인이 PC처럼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구글의 양자컴퓨터 <ytn 뉴스 캡처>
구글의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팅 기술을 이용해, 택배기사들에게 배달 주소를 파라미터 값으로 입력하고, 출발지에서 50곳의 방문지에 대한 동선을 계산하는 최적화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면 안타까운 사례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를 이용할 경우, 비용은 어떨까.

아직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상업용으로 활용되지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가격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은 현재로선 여의치 않다.

다만 기업이 직접적으로 양자컴퓨터를 구매하기도 하지만 사용한 만큼만 요금을 지불하는 클라우드(Cloud) 방식으로도 제공되고 있기때문에 앞으로 가격 부담을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중소기업이 부담없이 활용하려면

최근 정부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도 디지털 원격근무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집합근무를 해야하는 영세 중소기업들을 위해 화상회의솔루션 등 관련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도하는 6400억원 규모의 'K- 비대면 솔루션 바우처' 사업이 그것이다.

1개 중소기업당 400만원(자가부담 10%)을 지원함으로써 중소기업의 디지털화를 구현하고, 팬데믹 상황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확보하기위한 위한 정책으로, 이미 2만개 이상의 기업이 신청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고, 관련 솔루션을 공급하는 국산 IT기업들도 긍정적이다.

이같은 'K-비대면 솔루션 바우처' 사업과는 성격은 다르지만, 정부가 양자컴퓨터와 같은 고성능 연산 능력으로 산출된 데이터가 필요한 업종에게 저렴한 클라우드 방식으로 이를 제공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 양자컴퓨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가 슈퍼컴, 양자컴퓨터와 같은 첨단 IT인프라를 이용해 고성능 컴퓨팅(Hyper - Computing)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기업들은 최소한의 비용로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진다면 과로사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을 줄이고, 전체적으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
박기록
rock@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