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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사업자 규제’ 특금법, 일부 완화에도…은행이 ‘슈퍼 甲’ 됐다

박현영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감독규정이 나오면서 가상자산사업자 규제가 일부 완화됐지만, 사업자의 영업 지속 여부 결정에는 은행이 더 큰 권한을 행사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금융위원회는 개정 특금법이 오는 3월 25일 시행됨에 따라 감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특금법에 따라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는 일정 요건을 갖춰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후 영업해야 한다.

공개된 감독규정에는 가상자산사업자에게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는 3월 25일부터 자금세탁방지(고객확인, 의심거래 보고 등)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규제당국은 이 의무를 신고 수리 이후부터 이행해도 된다고 밝혔다.

금융위 측은 “실질적으로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신고 수리 이전에 고객확인 의무, 의심거래보고 의무 등을 이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므로 사업자는 신고 수리 이후부터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가상자산사업자의 의무 위반에 대한 감독도 신고 수리 이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사실상 신고 수리 이전부터 AML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번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고 수리 전 은행으로부터 실명인증 입출금계좌를 발급 받을 때 AML 관련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금법에 따르면 원화입출금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거래소들은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 받아야 한다.

FIU가 배포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매뉴얼에 따르면 사업자는 영업 신고 시 ‘실명계좌 발급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해당 확인서에는 계좌 발급 요건을 충족했는지 여부가 포함된다. 이 때 요건에는 ‘AML 위험 평가 결과’가 들어간다. 즉 규제당국이 AML 의무를 감독하는 건 신고 수리 이후부터이지만, 신고 수리를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은행의 AML 위험 평가 결과가 포함된다는 얘기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어닥스 관계자는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은행 실사 과정에서 AML 시스템 구축 현황과 담당자 인원 수 등을 확인한다”며 “신고 수리 후 감독한다고 해도 은행 실사를 위해 AML 솔루션 업체와 협약을 맺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신고 수리 전 AML 심사는 전적으로 은행에게 맡겨졌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번 감독규정에서도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기준이 명시되지 않은 만큼, 은행이 자체적으로 거래소의 AML 시스템을 평가해야 한다. 금융위 측은 계좌 발급이 은행의 영역이므로 평가도 은행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어닥스 관계자는 “AML 시스템 구축은 당연히 충족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그 시기가 신고 수리 후로 미뤄졌기 때문에 은행이 거래소에 AML 관련 기준을 더 적극적으로 제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팍스 관계자도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기준이 더 명확히 제시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또한 배포된 매뉴얼에 따르면 은행은 거래소가 신고를 완료하면 계좌를 주겠다는 조건부 확인서를 발급할 수 있다. 신고 수리 상황을 지켜본 후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거래소는 영업 신고 시 이 조건부 확인서를 제출하면 된다.

국내 한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는 “은행이 신고 수리를 조건으로 계좌를 발급해주겠다는 조건부 계약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 입장에선 은행의 권한이 더 커졌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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