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스타트업 법률상식 69] 상대방 동의 없이 한 통화녹음,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을까

지현주

[법무법인 민후 지현주 변호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계약을 체결한 A와 B, 애초 계약한 내용과 달리 개발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수정이 많아져 개발자 B는 A에게 약속한 일정을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B는 A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사정을 설명하였고, 둘은 개발 기한을 연장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런데 돌연 기한 연장에 합의한 적이 없다며 B에게 계약 해제를 통보하고 소를 제기한 A, B는 A와의 통화녹음을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

통화녹음에 대한 형사처벌의 가능성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이를 위반할 경우, 같은 법 제16조 제1항에 의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는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위 조항은 '타인간의 대화'를 금지하는 것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자가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통신비밀보호법이나 기타 법률에 대화 당사자의 녹음을 금지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 내용을 녹음한 사람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실제로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7호는 “감청”이라 함은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전자장치·기계장치 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문언·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3조 제1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제4조는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불법감청에 의하여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기통신의 감청은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전기통신 내용을 녹음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만을 말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므로, 전기통신에 해당하는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통화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여기의 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2. 10. 8. 선고 2002도123 판결).

통화녹음의 증거능력

그렇다면 대화의 당사자가 통화녹음본을 법원에 제출하면 증거로 무조건 인정받게 될까?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비밀로 녹음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채증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의한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1998. 5. 26. 선고 97나3172판결).

이처럼 증거의 채택 여부는 법원의 재량 범위에 속하기 때문에, 녹음 당시의 전반적인 상황과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증거 채택이 결정된다. 따라서 대화 당사자는 통화녹음을 증거로 제출할 수는 있지만, 해당 통화녹음이 무조건 증거로 채택되어 통화내용이 사실로서 인정받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의 가능성

따라서 B는 A가 제기한 소에서 A와의 통화녹음을 증거로 제출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고, 이로 인한 형사처벌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B는 통화녹음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것일까?

실제로 본인의 동의가 없는 통화녹음을 증거로 제출한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법원의 태도는 일관되지 않아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법원은 "원고의 동의 없이 원고의 사생활 중 비밀영역에 속하는 전화통화를 비밀리에 녹음하고, 이를 재생하여 원고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사항으로서 원고가 근무하였던 종전 회사의 관계자 등에게 공개되기를 바라지 아니하는 통화내용을 그대로 녹취한 녹취서를 민사 소송에 증거자료로 제출하여 그 소송의 당사자로서 원고가 근무하였던 종전 회사의 관계자에게 그 통화 사실 및 통화내용이 알려지게 됨으로써 원고로 하여금 불쾌감 등의 정신상 고통을 끼친 행위는 원고의 음성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였다"고 하여 통화녹음을 증거로 제출한 피고가 원고에게 300만 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고(수원지방법원 2013. 8. 22. 선고 2013나8981 판결), 반대로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 또는 이익이 있고 녹음자의 비밀녹음이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녹음자의 비밀녹음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로서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여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사안도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7. 10. 선고 2018나68478 판결).

따라서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하여 계약과 같은 중요한 주제에 관하여 합의할 때는 문서로 합의하는 것이 가장 좋고, 구두로 합의를 할 경우에도 만일을 대비해 대화 내용을 녹음해두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다만 이를 증거로 법정에 제출하는 것에는 사안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으니, 법률전문가의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지현주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기고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