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오징어게임 왜 못 만드나”…‘선공급 후계약’ 관행 사라질까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프로그램제공자(PP)가 유료방송사(SO)에 콘텐츠를 먼저 공급하고 계약은 나중에 맺는 관행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CJ ENM과 같은 대형PP들은 기존 관행을 탈피해 ‘선계약 후공급’ 체제로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IPTV3사를 비롯해 SO들도 원칙적으론 이 논리에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다만 선계약 후공급이 되면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약한 중소PP의 경우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CJ ENM을 비롯한 PP업계는 최근 이와 관련해 선계약 후공급 구조에서 중소PP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선계약 후공급과 관련해 한 가지 문제를 꼽는다면 그건 중소 PP의 반발이다. 대형PP에 비해 협상력이 약한 중소PP에는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유료방송 플랫폼의 수신료 재원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대형PP가 먼저 협상하게 되면 중소PP의 몫이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진행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선계약 후공급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이런 경우 경쟁력이 없는 PP는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 업계가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선계약 후공급이 돼야 제2의 오징어게임 나온다”

중소PP 보호방안만 마련된다면 선계약 후공급 체제로 가는데 이견을 달기는 어려워진다. PP 입장에서는 명확한 계약 없이 콘텐츠를 먼저 송출하다 보니, SO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불리할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사용료가 얼마인지 알 수 없어 향후 콘텐츠 투자 계획을 잡기 어렵다는 예측 불가능성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미 국회에선 지금의 선공급 후계약 관행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종합감사에서 “지금의 선공급 후계약 시스템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계약을 하고 공급을 해야지 공급한 후에 계약을 하는 제도가 어디 있나”라고 비판했다.

세계적 흥행을 이룬 한국산 콘텐츠 ‘오징어게임’이 국내 플랫폼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빛을 봐야 했던 이유 중 하나도 이 같은 장벽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 의원은 “플랫폼 사업자 중심으로만 사고하면 ‘오징어게임’ 같은 건 만들 수가 없는 것”이라며 “제작사, 배우, 작가, 감독을 중심으로 한 진흥 정책을 펴지 않는 한 국내 플랫폼에서는 도저히 이러한 콘텐츠를 만들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다.

홍석준 의원(국민의힘)은 역시 지난 방통위 국감에서 “넷플릭스에 많은 콘텐츠가 붙고 있는 게 사실 선계약 후공급 시스템 덕분”이라며 선공급 후계약 탈피를 주문했다.

◆ “유료방송만 규제, 오히려 협상 불리해질 수 있어”

다만 유료방송업계도 우려하는 대목이 있다. 선계약 후공급 시스템이 대형PP 위주로 또 다른 협상 우위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IPTV업계 한 관계자는 “선계약 후공급에 대해 우리 업계도 큰 흐름을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유료방송의 경우 만약 PP와 협상이 불발돼 블랙아웃(채널송출중단)이 되면 사후규제를 받는데, PP들은 그런 게 없다”면서 “한쪽만 규제를 받는 상황에선 똑같은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프로그램 사용료는 3분기에 나오는 정부의 방송 프로그램 평가 이후 산정을 하고 각 플랫폼마다 별도 정산 절차가 있어 관행으로 굳어진 것뿐”이라며 “계약 기간이 지나도 기 계약서를 기준으로 사용료를 월별로 지급하고, 채널 평가로 측정된 콘텐츠 가치를 소급 적용했기 때문에, PP사에서 콘텐츠 투자 규모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유료방송 사용료 배분구조 등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방송채널 대가산정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지난 1월 킥오프 회의를 시작으로 매달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협의회는 합리적인 프로그램 사용료 책정을 위해 PP 채널평가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