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는 해외의존도가 높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의 약점을 부각했다. <디지털데일리>는 소부장 육성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 유망기업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소재, 장비 등이 해외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잠재적 위험 요소로 꼽힌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이 내재화를 이뤄내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는 품목도 있다. 반도체 핵심 재료 프리커서(전구체)가 대표 사례다.
전구체는 화학기상증착(CVD), 원자층증착(ALD) 등 공정을 통해 반도체 기판 위 박막과 금속 배선을 형성할 때 기초가 되는 소재다. 캐패시터에 증착돼 전류 누설과 간섭을 막는 역할도 한다.
국내 전구체 시장에서는 2001년 설립된 디엔에프가 돋보인다. 현재 디엔에프는 김명운 대표가 이끌고 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박사학위 취득한 이후 한화석유화학 중앙연구소 촉매개발팀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한국 화학소재 산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로 회사를 차렸다.
지난 21일 대전 본사에 만난 김 대표는 “전구체 분야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로 개발과 검증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품질관리 이슈도 더 강조되고 있어 새로운 업체가 진입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05년 삼성전자와 알루미늄(Al) CVD 전구체를 공동 개발하면서 해당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2007년에는 ACL(Amorphous Carbon Layer) 전구체를 개발 및 납품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ACL 전구체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쓰이는 물질이다. 노광은 포토레지스트(PR)가 발라진 웨이퍼에 회로 패턴이 새겨진 포토마스크를 얹고 빛을 조사하는 단계다. PR을 입히기 전 ACL 전구체를 분사해 효과적인 패터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2010년 SOD(Spin On Dielectric) 공급, 2012년 DPT(Double Patterning Technology) 양산 등으로 성과가 이어졌다. 특히 DPT는 디엔에프의 효자 상품으로 국산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10나노미터(nm)대 칩은 한 번에 완벽한 회로를 그리기 쉽지 않아 ‘더블 패터닝’ 방식을 활용한다. 쉽게 말해 덧칠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DPT는 반도체 손상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과거 삼성전자는 DPT 전량을 미국 버슘머트리얼즈로부터 조달했다. 디엔에프가 참여하면서 현재는 5대5 구도로 재편됐다.
2013년부터 매출이 발생한 하이(High)-K, HCDS(헥사클로로디실란) 등도 디엔에프 사세를 키우는 데 기여했다.
김 대표는 “전구체 종류가 50가지 정도 된다. 범용 제품이 있고 특화 제품으로 나눠지는 것”이라면서 “디엔에프는 이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디엔에프는 건식 PR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구체를 새 먹거리로 보고 있다. 건식 PR은 기존 액체 형태의 습식 PR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소재다. 전구체의 일종을 증착해 노광 공정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극자외선(EUV) 기술이 본격 도입되면서 습식 대비 적은 원료 및 빛 조사량이 필요한 건식 PR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건식 PR은 증착 방식이다보니 뿌리는 습식보다 더 미세한 작업이 가능하다”며 “이제 시작 단계지만 고객사들 관심이 많다.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OLED 분야에서는 고객사 공정 변화에 따른 수요 대응에 나선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박막트랜지스터(TFT) 증착 방식 변경을 검토 중이다. TFT는 유기물로 이뤄진 레드·그린·블루(RGB) 픽셀을 제어해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전기적 스위치 역할을 한다.
그동안 TFT 증착에는 CVD 공법이 쓰였는데 두께의 균일도를 나타내는 박막도포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TFT를 얇게 만들거나 성능 개선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대안으로 나온 게 ALD 공법이다. 박막 두께가 조절 가능한 부분, 우수한 흡착력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디엔에프는 반도체 전구체 기술력 갖춘 만큼 수요만 있다면 OLED 시장에 즉시 진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전구체 분야에서 리딩 컴퍼니로 가는 게 목표다. 시장 구도가 정착한 만큼 점유율은 이제 의미 없다. 어떤 업체가 새 제품을 선점하고 기술력을 끌어올리는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