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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망 이용대가를 내야할까?

강소현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인터넷 망(네트워크) 무임승차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국내외 통신사업자(ISP)들이 넷플릭스로 인해 트래픽(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했다며 망 이용대가 지급을 요구하면서인데요. 하지만 넷플릭스가 인터넷 망에 대해 동등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를 거부하면서 두 사업자 간 논쟁은 수년째 평행선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인터넷 망을 두고서 두 사업자의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망 이용대가 내!” 글로벌 망 이용대가 논쟁, 시작은 한국?

최근 들어 세계 각국에서 다량의 트래픽을 유발하는 넷플릭스 등 빅테크기업에 망 이용대가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사실 이같은 논쟁은 국내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2019년부터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법적공방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법원은 지난해 6월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양사 간 싸움에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0부(김형석 부장판사)는 넷플릭스 인코퍼레이티드 및 한국법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 대해 각하하고 원고의 나머지 청구에 대해선 기각 판결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망 이용대가 지급과 관련,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가 국내 ISP의 인터넷 망에 대한 연결 및 그 연결 상태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자사 망에 발생시키는 트래픽은 2018년 5월 50Gbps(기가비트·초당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보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 1Gbps는 1초에 대략 10억비트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는 뜻)에서 2021년 9월 1200Gbps 수준으로 약 24배 급증했습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발생시키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망을 증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의 손실 역시 계속 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망 이용대가 청구 금액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 전용회선을 이용하기 시작한 2018년 6월부터 현재 기준 약 700억원, 소송이 길어질 경우 최대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합니다.

◆ 넷플릭스 “CP의 역할을 콘텐츠 제작…전송은 ISP의 몫”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왜 판결에 불복하고 SK브로드밴드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망 중립성입니다. 트래픽을 과도하게 유발한다는 이유로 망 이용대가를 청구하다면 이는 망 중립성을 위배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넷플릭스 주장을 이해하려면 망 중립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인터넷 망의 이용질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인 망 중립성은 전송하는 정보의 양에 따라 데이터 전달에 차별을 둬서는 안된다는 의미인데요. 전문가들은 망 중립성이 위배될 경우 ‘힘없는 개인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의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망 중립성 원칙에 따르면 ISP는 이메일을 1통 보낸 A사와 100통을 발신한 B사 모두 공평하게 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ISP가 CP에 콘텐츠 이용 증가에 따른 트래픽 양 급증을 이유로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망 중립성 원칙을 해친다는 건데요.

넷플릭스는 또 망 이용대가를 '접속료'와 '전송료'로 구분지으며, 이용자와 CP가 접속료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뒤 콘텐츠 전송 과정에 대한 비용(전송료)은 ISP가 담당할 몫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즉, 자신들의 역할은 콘텐츠를 만들고 가져다 놓는 것일 뿐 전송에 대한 책임은 ISP에 있다는 건데요. 이미 인터넷 사용료를 지불한 이용자가 요청한 콘텐츠를 전송하는 CP에 ISP가 망 이용대가를 청구하는 것은 이중 부과라고 지적했죠.

이 때 빠지지 않고 넷플릭스가 내세우는 기술이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Open Connect Apliances·OCA)입니다. OCA는 넷플릭스가 서비스 국가에 설치하는 일종의 캐시서버로, 특정 시간대 가입자들이 볼 콘텐츠를 예측해 OCA에 해당 콘텐츠를 미리 저장합니다. 넷플릭스는 자체 CDN인 OCA를 설치해 콘텐츠를 서비스 국가 인근까지 가져와 ISP의 트래픽 부담을 줄여왔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 SK브로드밴드 “이중 부과? 넷플릭스도 똑같은 망 이용자”


SK브로드밴드는 콘텐츠를 전송하기 위해 SK브로드밴드의 망을 이용했으니 넷플릭스도 예외없이 망 이용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국내 이용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ISP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 이용자가 요청한 콘텐츠는 넷플릭스가 일본과 홍콩에 설치한 OCA와 연결된 부산 국제전용회선을 타고 국내 망에 도달합니다.

이 때 OCA의 국제전용회선과 SK브로드밴드의 망(전용회선)을 1대1로 연결됩니다. 즉 이용자에 콘텐츠를 전송하기 위해 자사의 망을 이용했으니 여기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라고 SK브로드밴드는 말합니다.

OCA로 ISP의 트래픽 부담을 줄였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에 대해서도 SK브로드밴드는 반박합니다. OCA의 콘텐츠가 국내 가입자에게 도달하는 구간의 트래픽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가입자 100명이 넷플릭스를 통해 원본이 미국 시애틀에 있는 특정 콘텐츠 요청한다면, 이 콘텐츠는 국제망을 거쳐 국내망에 도달하게 됩니다. 한국 인근 OCA에 이 콘텐츠의 카피본을 저장해둔다면 이 콘텐츠는 더 이상 국제망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내 가입자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OCA가 있어도 이 콘텐츠가 국내 망을 100번 거치게 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므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트래픽 양에 대한 OCA의 절감 효과는 없다고 SK브로드밴드는 강조합니다.

이미 인터넷 사용료를 지불한 이용자가 콘텐츠 전송을 요청한 것이니, CP에 대한 망 이용대가 요구는 이중 부과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SK브로드밴드는 양면시장이라는 인터넷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인터넷은 CP와 최종 이용자 모두를 고객으로 하는 양면시장의 특성을 지녔다는 의견입니다. 소비자로부터 연회비를 수취하는 동시에 가맹점으로부터 결제 수수료를 지급받는 카드사가 양면시장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근 ‘인터넷 망 이용의 유상성에 대한 고찰’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망은 공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조대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앙면시장을 통화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조 교수는 “이중부과라는 넷플릭스 주장이 성립되려면 두 사람이 통화할 때 송신자 대신 수신자만 통신요금을 내도 전화가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통화는 송·수신자 모두 요금을 냈을 때 가능하지 않냐”고 반문하며 “이용자가 망에 접근(Access)하여 이용하는데 따른 반대급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망 이용대가는 이용자가 내면 넷플릭스는 안 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도 같은 망 이용자로서 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글로벌로 번진 망 이용대가 논의, 이번엔 다르다?

최근 망 이용대가 논의는 국내 뿐 아니라 유럽 내 통신사들을 중심으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럽 4대 통신사는 지난 14일 빅테크기업의 네트워크 개발비용 공동 부담 규칙을 제정해달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유럽연합(EU) 의회에 내기도 했는데요.

보다폰(영국)·텔레포니카(스페인)·도이치텔레콤(독일)·오렌지(프랑스)의 최고경영자(CEO)는 “모바일 트래픽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 부담 역시 크게 늘었다”며 “소수의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이 전체 트래픽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거대 플랫폼들과 공정한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통신연맹(FFT)도 4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최근 대선 후보자들에 총 15개 정책을 제안한 가운데 여기엔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지불을 강제하는 정책도 담겼습니다. FFT는 넷플릭스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는 만큼 그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주장했습니다. OTT로 급증하는 트래픽 양을 감당하기 위한 망 구축 및 유지비용이 증가한 데 따른 조치입니다.

실제 넷플릭스는 프랑스 내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1년 프랑스 인터넷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총 트래픽의 20%가 넷플릭스에서 발생했으며 페이스북과 아마존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망 이용대가 관련 논의는 늘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는데요. 통상 망 연동 당사자 간 기밀유지 협약(Non-disclosure agreement·NDA)을 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데이터 기반의 분석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망 이용대가를 지급한 선례는 물론, 지급의 근거가 될만한 데이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실제 넷플릭스는 국내 ISP들의 망 이용대가 지급 요구에 대해 “해외 ISP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한 선례가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해왔는데요.

넷플릭스의 글로벌 콘텐츠 전송 부문 디렉터 토마 볼머(Thomas Volmer)는 지난해 내한 당시 "과거에는 (망 이용대가를 지급)했을 수 있다. 실제 그랬다는 것을 공시자료를 통해 확인했다"라면서도 "현재 기준으로 무상 상호접속 원칙 하에 전 세계 어느 ISP에게도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지부진하던 논쟁도 조만간 변곡점을 맞을 예정입니다. 세계 각국 통신사업자(ISP)들이 넷플릭스 등 빅테크기업에 대한 망 이용대가 부과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기 때문인데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22’에선 디지털전환을 위한 자금조달(Financing the Digital Transformation)을 주제로 장관급 협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GSMA 측은 “증가하는 초고속인터넷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통신사업자가) 2025년까지 네트워크에 투자해야 할 비용은 9000억달러(약 1080조원)로 예상된다”며 “초고속, 최고 품질의 인터넷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전통적인 파이낸스 모델과 라이센스 분야에서 많은 기여와 장려를 가능하게 할 수단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ISP들은 MWC2022를 계기로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지급을 요구하는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신업계관계자는 “(넷플릭스는) 해외에서 망 이용대가 내는 사업자가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현재 통신사업자들이 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만의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 글로벌 모든 ISP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안임을 MWC2022를 통해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두번째 변론기일이 오는 3월16일로 예정된 가운데 MWC2022를 통한 글로벌 논의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강소현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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