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 칼럼

[취재수첩] 홈쇼핑 비슷한 T커머스, 꼭 더 만들어야 하나

이안나
사진=SK스토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SK스토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는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제안센터에 “중소기업 전용 T커머스 채널 신설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건의문을 제출했다. TV홈쇼핑 겸영 T커머스 신설시 연 2000억원 이상 중소기업 판로확대 효과를 가져온다며, 새 정부 출범을 앞둔 현재가 중기전용 T커머스 신설 적기라는 주장이다.

과연 신설 T커머스는 업계 긍정적 효과로만 작용할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만 보면 T커머스 채널에 입점하는 중소기업 수가 증가하는 만큼 판로확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채널 개국으로 인해 업계 및 시청자들에게 생기는 부차적 영향들까지 고려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가장 먼저는 시청자 시청권 저해 문제다. 현재 TV홈쇼핑과 T커머스를 합한 채널 수는 총 17개. 유선방송이나 인터넷TV(IPTV)로 채널을 돌리다보면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 사이 곳곳에 홈쇼핑 방송이 흘러나온다. T커머스는 TV홈쇼핑과 달리 ‘양방향 채널+녹화방송’이라는 특징이 있지만 실제 이를 체감하는 시청자는 일부다.

가뜩이나 ‘홈쇼핑 공해’가 심하다며 채널을 한 곳에 몰아넣는 ‘채널 연번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매해 국정감사 때마다 등장한다. 채널 연번제는 기존 업체들은 물론 신설 T커머스를 주장하는 이들 역시 원하지 않는 방식일 터다. 홈쇼핑 특성상 채널 위치에 따라 매출이 급변해 뒷번호 배치 시 그만큼 사업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T커머스 10개 사업자 중 9개가 대기업에 속해 있어 공공성이 한층 강화된 중기전용 T커머스가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명분이 취약하다. 현재 10개 T커머스 채널에서 중소기업 상품을 판매하는 비중은 70% 이상이다. 중기 판로를 위한다면 기존 사업자들 대기업 제품 판매 비중과 판매수수료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된다.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가 제출한 건의문엔 ▲100% 중기 상품편성 채널 운영 ▲중기 상품 수수료율 상한제 도입 ▲무(無)정액방송 운영 ▲겸영 TV홈쇼핑 채널을 활용한 스케일업 효과 극대화 등 내용을 담았다. 채널 승인 목적을 위한 취지는 좋지만 신설 T커머스가 경쟁을 이어갈 체력을 갖출지도 관건이다. T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이들 역시 좋은 채널 확보를 위한 송출수수료 경쟁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매해 급증하는 송출수수료 문제에 기존 사업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지만 이는 단시간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위해 지난해 수차례 업계 관계자들과 모이는 등 이야기를 나눴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신설 T커머스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혼자만 승승장구 할 수는 없을 터다.

이명박 정부(2011년) 시절엔 홈앤쇼핑이, 박근혜 정부(2015년) 시절엔 공영쇼핑(아임쇼핑)이 나란히 개국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중소기업 제품 판로확대’를 이유로 들었다. 이 흐름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T커머스라는 대상만 바꿔 반복되고 있다. 중소기업 판로 확대를 위해 새 T커머스 채널을 신설하는 사이, 한편에선 중소기업 프로그램공급업체(PP)가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홈앤쇼핑·공영쇼핑 개국 이후 약 10년이 지난 현재 중소기업이 판로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은 눈에 띄게 늘었다. 각종 이커머스 업체들이 중소상공인 디지털전환을 지원하며 소규모 물량과 투자 비용 없이 시청자들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라이브 커머스도 보편화됐다. 더 이상 정부가 선심성으로 홈쇼핑 채널을 늘리는 행보는 멈춰야 한다.
이안나
anna@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