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취재수첩] 발란이 겪는 건 ‘성장통’일까?

이안나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온플법(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은 사실 대기업보다 신흥 플랫폼에 더 필요하다고 봐요. 덩치 큰 기업은 중개사업자로서 자체적으로 책임감을 가지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감시의 눈이 적은 기업들은 오히려 ‘꼼수’를 부리는 일이 많으니까요.”

온플법 제정과 폐기를 두고 이야기하던 중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 역시 설립된 지 3~4년에 불과한 신흥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규제의 자유가 아닌 플랫폼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

최근 명품 플랫폼 발란이 겪은 여러 논란들을 보면 왜 신흥 플랫폼에 오히려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지 납득이 간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선 제대로 된 사과 없이 모호한 설명을 앞세우고, 할인 이벤트 전 가격 인상 의혹과 과도한 반품비 등 지적에 대해선 파트너사에 책임을 돌린다. 소비자 불만은 넘쳐나는데 발란은 단순 실수 혹은 책임 전가로 일관한다.

발란은 지난 3월과 4월 두 차례 개인정보유츨 사실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신고했다. 첫 번째 개인정보 유출 후엔 명확한 유출 시점과 항목들을 고지했지만, 두 번째 과정에선 사과 없이 오히려 주기적 비밀번호 변경을 권유하는 방식으로 안내하는 데 그쳤다. 발란은 “2개 유출 사고를 단건으로 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개인정보유출 피해 고객들은 이 사실을 몰라도 된다는 의미일까. 실제 4월 한 고객은 발란에 신규가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개인정보유출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고객이 의문을 품고 적극 알아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과정이었다. 발란이 고객들에게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발란은 배송상태를 구분하지 않고 전체 반품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불리한 거래조건을 유지하고 있다. 배송 전 단계에서 취소를 해도 높은 반품비를 지불해야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발란은 반품비는 입점 파트너사(판매업체)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이른바 프로모션 직전 가격을 인상한 의혹을 산 ‘네고왕 사태’ 때도 “서버오류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전 가격이 수정된 건 개별 파트너사가 환율 변동 등 다양한 요인으로 자체 수정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발란은 지난해 ‘머·트·발’로 불리는 명품 플랫폼 사이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2배 이상 늘고, 특히 이번 네고왕 할인 이벤트를 진행한 5일간 판매금액만 250억원을 넘어선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4월 초 5~6만명대이던 발란 일일 이용자수(DAU)는 네고왕 이벤트 기간 최고 11만9000명까지 올라갔다.

발란이 거래액이 크게 늘었다는 성과에만 취해 고객 신뢰라는 탄탄한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잊는다면 그야말로 큰 위기다. 최형록 발란 대표는 ‘고객집착’을 강조해왔지만, 고객 불만과 발란의 어설픈 해명이 이어지자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전자상거래법(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다.

스타트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미숙한 부분이 드러나곤 한다. 서비스 운영과 조직관리 등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성장통’이다. 이 경우 고객이 신뢰하고 지속 이용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며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면 된다. 투자자들이 당장 실적보다 잠재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발란이 겪는 일련 과정과 모습들은 단순 성장통으로 보이지 않는다. 발란의 잇따른 실책에도 대표의 공식 사과나 플랫폼 기업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찾기 어렵다. 발란을 믿고 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겐 상처다. 프로모션 전 가격인상과 개인정보유출 축소 등 의혹들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면, 발란은 소비자 기만행위로 의심받는 사건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안나
anna@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