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USB-C부터 8K TV까지…EU 규제의 명과 암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최근 유럽연합(EU) 의회의 결정에 전세계 전자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주인공은 다름아닌 ‘무선 장비 지침: 전자 장치용 공통 충전기(Radio Equipment Directive: common charger for electronic devices)’ 관련 법안이다.
이 법안은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자제품의 충전 포트를 USB-C로 통일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법안에 따라 2024년 말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를 비롯한 태블릿과 카메라 등에 반드시 USB-C 충전 포트가 부착돼야 한다.
다만 법 발효를 위해서는 유럽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 유럽 이사회가 최종 승인을 마치면 EU 관보에 등록된 후 EU 국가에서 입법 절차를 밟는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제품은 애플의 아이폰이다. 애플은 그간 태블릿, 노트북 등 일부 제품에 대해서는 USB-C를 탑재했지만 스마트폰은 독자 충전 포트인 ‘라이트닝’을 고수해 왔다. 이번 결정에 대해 애플도 순응하는 분위기다. 애플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그렉 조스위악 부사장은 지난달 말 한 행사에서 “EU의 결정을 존중하며 우리는 이를 준수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애플의 라이트닝은 많은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했던 부분이다. 애플의 환경 보호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2020년 전자 폐기물 감축을 위해 애플은 기본 구성품에 충전기를 제외했지만, 결국 아이폰 라이트닝 전용 충전기를 별도 구매해야 하는 점 때문에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논지다.
불만이 쌓이자 USB-C 아이폰에 대한 소비자 요구는 계속됐다. 미국의 한 대학생이 아이폰을 개조해서 만든 ‘세계 최초 USB-C 아이폰’은 경매를 통해 1억원이 넘는 금액에 판매되기도 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USB-C 아이폰을 바라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사례다.
EU의 정책으로 ‘1억원’을 주지 않고도 소비자는 USB-C 아이폰을 만나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업계와 시민단체, 소비자는 이를 반기고 있다. EU를 시작으로 한국을 포함해 미국, 브라질, 인도 등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이다. 긍정적인 나비효과로 읽힌다.
그렇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EU의 결정으로 암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EU가 에너지 소비효율 관련 기준을 강화에 나섰는데, 지금까지 공개된 기준에 따르면 8K TV는 유럽 시장에서 판매가 불가능하다.
EU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75인치 8K TV의 경우 시간당 에너지 소비량이 141와트(W) 아래로 떨어져야 하는데,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 8K TV는 이보다 절반 이상 높은 300W 가량이다.
규제 일정도 급박하다. 당장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업계는 “8K TV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준”이라며 강하게 반발 중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도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달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기술장벽(TBT) 위원회에 특정무역안건을 제기할 계획이다.
TV 시장의 침체기라는 상황을 차치하고서라도 EU의 급진적인 결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기업이 규제에 동참한다고 해도 당장 판매되는 제품의 에너지 소비 효율을 낮추려면 일정 기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USB-C에도 약 2년이라는 계도기간을 부여한 만큼, TV 에너지 소비효율 관련 규제에도 시간을 넉넉하게 제공해야 한다. 급박한 규제는 결국 실효성 부제와 시장 침체라는 암울한 결과를 낳게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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