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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자율규제 공(公)약→공(空)약…180도 변한 플랫폼 옥죄기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 기자] 플랫폼 ‘자율규제’를 외쳤던 윤석열정부가 출범 약 6개월만에 180도 바뀐 정책방향을 내세우고 있다.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 후 벌어진 카카오 서비스 장애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플랫폼 옥죄기에 들어갔다. 자율규제 대선공약이 파기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국회와 규제당국에서 법규제 강화를 실현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오는 21일 전원회의를 열고 온라인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최근 온라인플랫폼정책과를 신설했다. 독과점 이슈 등과 관련해 추가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인지 방향성을 정립하고 해외 사례 등을 살펴보기 위해 연내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

이와 함께 국회는 여야 이견 없이 ‘카카오먹통방지법’으로 불리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방발법)을 통과시켰다. 일정 규모 이상 부가통신사업자와 집적정보통신시설이 재난관리계획에 포함된다. 지난 정부에서 온라인플랫폼 규제 법안을 추진했던 만큼 야당은 이에 반대할 리 없고, 여당은 바뀐 윤 정부 기조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사실, 이는 대선공약과 정면 대치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플랫폼 자율규제 공약을 내세우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규제 강화가 꼭 능사는 아니다”라고 발언했었다. 기업‧경제 활성화를 우선에 둔 만큼 섣부른 규제도입을 지양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윤 정부는 완전히 상반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판교데이터센터 화재 전날인 지난 10월14일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발표한 10월11~13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 대비 1%포인트 하락한 28%에 그쳤다. 4주 연속 20%대 지지율이다. 전국민적 관심이 쏠린 카카오 장애 사태에 ‘칼’을 꺼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플랫폼산업이다. 업계에서는 무리한 규제 도입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온라인플랫폼 규제 법안을 도입하려 할 때, 업계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조사와 의견 수렴 없이 막무가내식 법규제 강화에 불안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판교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은 독과점과 상관없는 상황인데, 이를 과도하게 확대 적용해 강력한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경우, 서비스 장애를 책임지고 반성하기 위해 대표 사퇴뿐 아니라 3일간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를 통해 문제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 대책을 발표하는 전례 없는 사과를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플랫폼 전방위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실화될 경우 국내 플랫폼 산업에 대한 해외 투자 감소와 자본 유출, 스타트업 생태계 악화, 국내 기업 경쟁력 악화 등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례로 이커머스 플랫폼 경우 네이버, 쿠팡, 11번가, 지마켓, 위메프 등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처럼 아마존이 독점하는 산업 구조는 아니다. 오히려 엎치락뒤치락 하는 경쟁을 지속하면서 소비자 혜택이 커지는 형태다. 유럽은 자국 시장을 해외 플랫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국은 사실상 독점 사업자인 거대 빅테크 GAFA(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를 규제하기 위해 플랫폼 법규제에 나섰기에, 국내 상황과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관련해 지난 8일 열린 ‘소비자 중심의 온라인 플랫폼 현황 및 과제’ 정책토론회에선 “한국은 미‧중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맞설 수 있는 토종 플랫폼을 가진 유일한 국가로,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을 위해 오히려 규제를 완화해야한다” “국제적으로 GAFA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육성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제는 정부가 대선공약 때 자율규제를 내세운 근거를 다시 들여봐야 한다. 기업 길들이기를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다. 현재 지금 이 시간에도 글로벌 경제침체 공포는 커지고 있다. 주요국 통화 긴축과 인플레이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전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전세계 곳곳에서 경기둔화를 경고하고 있다.

다가오는 위험에 대응하고 경제 활성화에 방점을 찍어야 할 때다. 성장하는 플랫폼 산업이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대신, 규제하고 묶어두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틈을 노린 해외 플랫폼 국내 역습은 불 보듯 뻔하다.
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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