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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무의미" 삼성·TSMC 한목소리…'30년 1위' 자신감 [IT클로즈업]

김도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메모리·파운드리 압도적 선두, 불황 속 대형 투자 지속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그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은 1위 기업의 몫이었다. 선두주자가 신기술을 가장 먼저 확보하면서 시장을 주도했고 후발주자가 이를 쫓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최근 1~2년 새 달라지고 있다. 2~3등 회사가 1등보다 앞서 첨단 공정을 선보이는 반전을 보여주는 추세다. 반도체 산업 주축인 메모리와 수탁생산(파운드리) 시장이 그랬다.

각 분야에서 반격을 허용한 삼성전자와 대만 TSMC.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이에 이들은 반도체 부문에서는 이례적으로 숫자로 답했다. 단순히 먼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작심 발언으로 풀이된다.

◆같은 단계라고 같은 수준이 아니다=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기술력 및 생산성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최신 제품을 매번 처음으로 공개한 점, 각각 점유율이 30~40%에 달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일리 있는 이야기다.
이를 깬 것이 약 2년 전 미국 마이크론이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메모리 빅3로 꼽히지만 양사와 격차가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랬던 마이크론이 2020년 11월 176단 낸드, 2021년 1월 10나노미터(nm)급 4세대(1a) D램 생산 소식을 전했다. 2022년에는 232단 낸드 양산, 5세대(1b) D램 개발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대로면 모두 세계 최초 성과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3세대(1z) 및 1a D램 선폭을 공개했다. 각각 15.0nm, 14.0nm이라고 했다. 2016년 D램 공정이 10nm대에 진입하면서 메모리 업체들은 정확한 숫자를 표기하지 않기로 했다. 기술적 한계에 도달하면서 1nm의 선폭을 줄이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기 애매해진 탓이다. 삼성전자의 언급은 15.Xnm, 14.Xnm 수준의 경쟁사보다 뛰어난 기술을 갖췄다는 표식인 셈이다.

올해 5월에도 삼성전자는 직접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앞서 1b D램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 6세대(1c) D램으로 직행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에 “12.0nm 기반 1b D램을 건너뛴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개척하다 보면 일부 계획 변경도 존재한다. 선도기업으로서 챌린지도 겪고 저희 로드맵으로 적용하고 확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당시 은근하게 선폭을 오픈한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서버용 1b D램 양산을 공식화했다.

전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TSMC 마찬가지다. TSMC는 지난 6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3nm 반도체를 상용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사전에 예고한 3nm 라인 가동 시점보다 늦어지면서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다.
TSMC 애리조나 공장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트위터 캡처
TSMC 애리조나 공장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트위터 캡처
결국 TSMC는 지난 29일 3nm 반도체 양산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보다 반년 정도 뒤처졌으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앞서 TSMC는 3nm 공정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이 80% 상회한다고 전했다. 자체 기준인 만큼 확실하지는 않으나 일정 수준은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없으나 업계에서는 아직 높은 수율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업계 처음으로 차세대 트랜지스터 GAA(Gate All Around) 기술을 도입한 점은 고려 대상이다. TSMC는 3nm까지 기존 핀펫(FinFET) 공정을 쓰기로 했다.

이미 TSMC는 삼성전자와 4~5nm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바 있다. 수율 싸움에서 큰 격차를 보이면서 대형 고객들이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3nm가 다소 지연됨에도 동요하지 않던 근거다.

◆모든 건 고객 수요에서 결정된다=삼성전자와 TSMC가 조급하지 않을 수 있던 밑바탕에는 산업의 본질에 있다. 반도체가 국가 안보 자산으로 부상할 만큼 중요하지만 엔드 유저의 주문 또는 구매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추더라도 고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마이크론이 1b D램을, 삼성전자가 3nm 공정을 세계 최초로 스탠바이했다는 자체도 의미가 있으나 시장 판도를 바꾸진 못한 이유다. 여전히 이전 제품이 대세고 세대교체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TSMC는 시장 상황, 고객 전략에 개발 속도를 맞춰가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최근 반도체 업황 부진에도 양사는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업체가 2023년 감산을 시사한 가운데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생산량 축소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실제로 경기 평택 2~4공장 투자를 진행 중이다.

TSMC는 대만은 물론 미국, 일본 등에 첨단 시설이 투입되는 신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이달 초 미국에서 투자 규모를 3배 늘리고 최신 공정 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일본과는 협력을 늘리는 한편 최첨단 기술은 대만부터 적용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하면서 자국 내 우려를 일축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TSMC 행보에 대해 시각이 엇갈린다. ‘경쟁사와 초격차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과 ‘무리한 투자가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팽팽하다. 분명한 건 30년 이상 분야별 선두를 유지해왔다는 점, 주요 고객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친 결정이라는 점이다. 양사가 수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지위를 유지할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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