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미국 못 가는 중국, 제자리걸음 유럽"…K배터리 위상↑

김도현
- 러브콜 쏟아지는 LG엔솔·삼성SDI·SK온
- 美 IRA·EU CRMA 대응 및 현지 인력 수급 관건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전기차 산업에서 한국 배터리 제조사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미·중 갈등, 유럽 신생 업체 부진 등으로 국내 3사에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덕분이다. 전통적으로 시장을 주도해온 완성차업체 입김이 약해질 정도로 위상이 높아지는 추세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합작사(JV)인 얼티엄셀즈 4공장 구축 협상이 합의 없이 종료됐다.

이번 사안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추가 투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이는 내연기관차 시대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협력사는 명확하게 을(乙)이었다. 유수의 배터리 회사들이 유럽, 미국으로 향한 것도 현지 고객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다.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 내외로 압도적인데다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생각보다 대안이 많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양과 질을 갖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에게는 긍정적이다.
현재 배터리 업계는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 나라가 이끌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은 내수시장을 앞세워 급속도로 성장했고 CATL, BYD는 물론 CALB, 궈쉬안 등 후발주자도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들은 중국 내 경쟁이 심화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미 CATL은 독일 공장 가동에 들어갔고 동유럽 등에 추가 생산기지를 마련할 계획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 유럽 등과 함께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힌다. 전기차 1위 테슬라는 물론 GM, 포드 등 강호들이 즐비한 나라다. 장기적으로 진입하지 않으면 사업 확장이 제한된다.

이에 CATL은 포드와 손잡고 미국 버지니아주 진출을 추진했으나 주정부에서 거부를 선언했다. 미국 내 주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반도체, 2차전지 등 공장 유치전을 펼치고 있는 점, 미국 기업인 포드가 협업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 신경전이 심화한 만큼 반중(反中) 정서가 CATL 투자를 막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후보지인 미시간주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CATL은 멕시코 공장을 통한 우회 경로를 모색했으나 여의치 않은 상태다.

일본과 유럽은 각자의 사정으로 전기차 공룡들과 협력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은 파나소닉을 제외하면 양산 체제를 갖춘 곳이 사실상 전무하다. 파나소닉마저도 테슬라 물량에 집중하고 있어 자국 고객 챙기기도 버거운 것으로 파악된다. 유럽의 경우 노스볼트, 사프트, 모로우, 베르코어, 브리티시볼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기대보다 속도가 더딘 분위기다. 영국 회사인 브리티시볼트는 파산 신청할 정도다. 가장 앞선 노스볼트조차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국내 배터리 3사로 문의와 주문이 몰리게 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핵심 프로젝트인 얼티엄셀즈 확대를 주저할 만큼 여력이 없다. 투자를 안 해서가 아니다. 한국 미국 유럽 중국 인도네시아 등 5각 생산거점에서 활발하게 증설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GM 외에도 스텔란티스, 혼다, 현대차 등과 JV를 세웠고 도요타, 포드 등과도 논의 중이다. 아울러 테슬라, 폭스바겐, 이스즈 등 고객사가 20여곳에 달한다. 말 그대로 행복한 고민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투자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삼성SDI에게도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스텔란티스와 JV를 필두로 BMW, GM, 볼보, 폭스바겐 등과도 JV 설립설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증설을 확정한 말레이시아 외에도 미국, 헝가리 등지에서 신공장 건설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자금 조달, 수율 이슈 등에 휘말린 SK온도 중장기적으로는 좋아질 전망이다. 당장 포드와 튀르키예 합작공장이 무산 위기에 처했으나 미국에서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와도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마련하기로 약속했고 헝가리, 중국 등 투자는 현재진행형이다.

이같은 트렌드는 우리나라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유럽과 미국에 진출한 점, 오랜 기간 쌓아온 배터리 노하우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한국 공장을 ‘마더팹’으로 두고 이를 토대로 글로벌 생산기지 조기 안정화하는 부분이 강점으로 꼽힌다. 앞선 2가지 요인의 시너지 사례다.

향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 원자재법(CRMA) 대응과 현지 인력 확보 등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K배터리 대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미리 규모의 경제를 갖춘 우리나라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버틸 힘이 강하다. 후발주자들은 수율 등 기술력 향상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대로면 국내 3사의 협상력이 높아져 수익성도 좋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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