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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게임산업 전문가 진단, “부정적 프레임 떨칠 기회”

오병훈

왼쪽부터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
왼쪽부터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
-사행성·중독성 낙인…“게임 장점 가려지고, 음성화 될 우려”
-인식전환 위한 적극적인 문화예술 관련 정책 지원 필요
-게임사도 노력 필요, 문화예술적 가치 높일 게임 제작돼야


[디지털데일리 오병훈 기자]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게임산업 성장을 억제하고, 입법기관이 게임을 규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근거가 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게임산업과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게임에 대한 사회 전반에 걸친 인식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법적으로도 게임이 문화예술로 인정받는 시대다. 게임산업은 콘텐츠 분야 해외 수출 효자 산업으로도 꼽힌다. 그럼에도, 아직도 ‘사행성’이나 ‘게임 중독’ 등 키워드들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제질병분류에 반영했다. 국내에서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지를 두고 4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달에는 사법부가 플레이투언(Play-to-Earn, 이하 P2E) 게임에 대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취소 처분이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판결문에서는 P2E 게임에 대해 ‘사행성게임물의 신종 형태’라고 못박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게임산업 숙원으로 ‘인식 전환’을 꼽는다.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진흥책이나 문화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인식 전환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게임산업은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지원 및 육성되기보다 규제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며 “국가는 게임산업이 수출 효자로서 으뜸 한류 콘텐츠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폭력성, 사행성, 선정성 요소 등으로 규제의 벽을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조금씩 천천히 인식 개선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문화예술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게임을 문화예술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흥책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게임에 대한 인식 전환 출발선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은 “어떤 것이든 규제하거나 낙인을 찍게 되면 더욱 음성화되기가 쉽고, 가지고 있는 장점을 드러내지 못한다”며 “게임이 문화예술로 인정받는 가운데,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문화예술진흥법이 실질적게임인 게임 산업 지원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부처와 입법기관, 게임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도적으로 게임사 및 게임이용자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규제보다는 지원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게임사는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만 매몰되기보다 장기적으로 이용자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하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과 일문일답

Q. 게임업계 최대 위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재홍 학회장) 게임업계의 최대 위기 요소는 게임과 게임산업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네덜란드 역사학자인 ‘요한 호이징아’는 인간을 놀이하는 동물(호모루덴스)이라고 했다. 게임은 디지털시대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디지털 놀이’다. 따라서 게임산업은 보호하고 진흥돼야 하는 문화예술산업이다. 게임산업이 일자리 창출 산업이자 미래 성장 동력산업이며, 메타버스 시대를 열어 줄 ‘첨단 종합 문화예술 기술산업’이라는 긍정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게임산업은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지원 및 육성보다 규제 대상에 더 가까웠다. 게임사도 스스로 게임이 지닌 문화적 가치나 예술적 가치를 망각한 채, 경제적인 가치에 몰입돼 서사적 완성도보다 수익성 올리기에 급급해하는 등 인식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Q. 게임이 지금까지 법적으로 문화·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경일 이사장)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예술 장르가 초창기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쇼팽 음악은 ‘쌀롱’ 음악으로, 오랜 기간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이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게임이 쾌락만 좇는 ‘오락’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뇌과학 측면에서 게임 하는 사람의 뇌를 촬영해 보면, 사람들은 쾌락을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쾌락을 위해 하는 것은 도박이다. 게임하는 뇌는 실제로 문화예술 활동 못지 않은 많은 전두엽 활동량을 보이고 있다. 게임을 (단순히) ‘즐겁고 신난 오락’이라고만 하는 식의 프레임은 지양돼야 한다.

Q. 올해부터 게임을 문화예술로 인정하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어떤 긍정적 변화가 예상되나.

▲(이재홍 학회장) 앞서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는 게임을 예술로 인정해 왔다. 게임이 대중 문화예술로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은 향후,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개선될 것이고, 게임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게임이 법적으로 문화예술로 인정된 만큼, 그동안 저평가 돼오던 게임의 이미지를 고급문화로 상승시킬 수 있는 정부의 게임문화예술 정책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상품에 걸맞은 인프라 확충과 문화예술 이벤트 설계, 게임 제작 전문가들이 예술인으로서 지위가 확보될 수 있도록 순차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김경일 이사장) 어떤 것이든 규제하거나 낙인을 찍으면 음성화되기가 쉽고, 장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500년 전 활자가 처음 나왔을 때, 인류는 그 활자를 터부시하고 비웃었다. 늘 베껴 쓰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량 인쇄된 책을 오히려 책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으로) 게임도 과거와 달리 당당히 문화예술로 인정받는 가운데서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Q. 지난해 중국이 판호 발급을 재개한 바 있다. 향후 게임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견지해야 할 자세가 있다면?

▲(이재홍 학회장) 중국이 판호 발급을 재개한 상황을 조심스럽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중국당국이 공식적인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큰 기대를 걸 수는 없다. 앞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천천히 중국 판호를 받기 위한 현지화 작업을 먼저 해 둘 필요는 있다. 아울러 중국 한한령을 경험한 만큼,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글로벌 전략 다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Q. 최근 게임업계에서 국내 수요가 적은 콘솔 게임 신작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재홍 학회장)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확률형 아이템 방식 비즈니스모델(BM)과 이별하고, 게임패스나 정액제 등 안정된 과금 방식으로 회귀하기 위함이다. 혹은 중국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와 유럽 콘솔시장 이용자를 공략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Q.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업계가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이재홍 학회장) 최근 게임사와 이용자 간 소통 부재가 원인이 돼 (마차시위나 트럭시위 등) 집단 소비자운동으로 발전한 바 있다. 소비자운동은 해당 게임 특성에 맞게 발전된 형태로 진화했으며, 소비자 시위 방법 또한 집단화·대형화·조직화되고 있다. 게임 이용자는 스스로 게임 서비스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게임사는 이용자와 적극 소통해 이용자가 제시하는 개선안을 경청하고 이를 반영해 게임 서비스 운영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김경일 이사장) 모든 산업은 다른 산업과의 공존 및 협업을 통해 발전한다. 게임 외 산업과 연계성을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게임 회사니까’라는 생각이 다른 산업과 교류를 방해한다면, 가장 동떨어진 섬을 만드는 것이 될 수 있으니 피해야 한다.

Q. 지난해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와 관련해 각종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어떻게 봤나.

▲(이재홍 학회장) 현행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제도는 사후심의다. 사후심의는 게임이 서비스된 후 문제를 발견하고 대응할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넥슨 서브컬처 게임 ‘블루아카이브’가 12세 이용가로 자체등급분류 됐다가 모니터링에서 등급재분류권고를 받은 후, 청소년이용불가 버전과 10대(teen) 버전으로 나눠 서비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는 이용자 항의 사태로 발전했다. 시대적 변화와 문화적 변화에 따른 현실적이고 명확한 등급분류 기준 개정이 필요하다.

Q. 올해 게임업계 산업 전망을 어떻게 바라보나. 아울러 게임산업 및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재홍 학회장) 게임업계는 전 세계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회사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전략으로 신규 지식재산권(IP)을 발굴과 더불어 멀티플랫폼 크로스 플레이 등 장르 다변화를 꾀하고, 글로벌 공략과 현지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올해는 케이(K)-게임산업이 글로벌 장악력을 높여 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통 큰 지원과 진흥정책이 구축되길 바란다. 정부와 산업계와 학계와 이용자 간 적극적인 공론장을 열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

▲(김경일 이사장) 우리나라는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심리학자 입장에서 선진국이라 함은 ‘내가 하는 걸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남이 내려놓은 정의를 따라 쫓아가면 됐다. 이제는 우리가 만드는 “한국 게임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가 만드는 게임은 무엇인가” 등 스스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늘 게임업계 관계자에게 “당신에게 게임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본다. 많은 사람이 “게임은 게임이다”라고 답한다. 만족스럽지 않다. 다양한 정의들이 각사 개발자들로부터 나오고, 그게 철학이 된다. 국내에 게임 회사는 많지만 게임에 대한 철학이 있는 회사가 적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상하다. 올해는 “내가 만드는 게임은 이것”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릴 수 있길 바란다.

오병훈
digim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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