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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파운드리③] TSMC 마인드 배운다…'한국판 미디어텍' 육성 도전

김도현
TSMC 홈페이지
TSMC 홈페이지

1983년 2월 ‘도쿄선언’이 40주년을 맞았다. 이병철 창업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한 해다. 그로부터 10년 뒤 삼성은 메모리 세계 1위에 올랐고 30년이 지금까지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삼성은 메모리보다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큰 시스템반도체 공략에 나선다.

삼성은 파운드리 분야에서 확실한 2위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으나 1위 TSMC와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업 구조에 따른 태생적 한계, 부족한 정부 지원 등이 발목을 잡는다는 평가다. 본지는 4회에 걸쳐 삼성 파운드리의 명암을 짚어보고, 미래 경쟁력을 위한 제언을 담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설계(팹리스)-설계 및 생산 지원(디자인하우스)-생산(파운드리)-후공정(OSAT) 등 크게 4부문으로 나뉜다.

대만 반도체의 강점은 단단한 생태계가 꾸려진 부분이다. 미디어텍-글로벌유니칩(GUC)-TSMC-ASE 등은 각 파트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 주목할 곳은 미디어텍이다. 나머지 3개 업체는 업계에서 확실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미디어텍은 가파른 성장세로 미국 팹리스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미디어텍은 세계 3위 파운드리 UMC의 사내 조직으로 1990년대 말 분사한 회사다.

당시 컴퓨터 CD, DVD 관련 반도체를 만들던 작은 팹리스 중 한 곳에 불과했다. 2000년 중반 미디어텍은 DVD용 칩 점유율 50%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고 이 시기에 중국 피처폰용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 DVD, 피처폰 등 주력 산업이 저물기 시작하면서 미디어텍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중저가 AP로 몸집을 키워가더니 선두주자 퀄컴을 위협할 만큼 커졌다. 최근 고성능 AP까지 선보이면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서 TSMC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설계 능력을 갖췄더라도 파운드리와 협업이 없다면 기량을 펼칠 수 없는 것이 시스템반도체 산업 구조다. TSMC는 미디어텍을 비롯한 팹리스 스타트업에 생산라인을 활용한 기회를 주면서 적극적인 공정 지원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엔비디아, AMD 등도 TSMC와 함께 자라난 팹리스 공룡이다.

TSMC와 경쟁 중인 삼성전자는 짧은 역사만큼이나 팹리스와 협력한 사례가 많지 않다. 독자 사업부로 전환된 2017년 이전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시스템LSI사업부 위주로 협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파운드리적 마인드’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TSMC의 경우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로 팹리스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하는 메모리 시장에 특화돼 있다. 메모리는 주문을 받아 제작하기보다는 ‘선(先) 생산 후(後) 납품’ 방식으로 이뤄진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경계현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삼성 파운드리 평판이 그렇게 좋진 않다. 메모리 사업과 파운드리 사업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이해하는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파운드리는 건물을 지어놓고 손님이 오면 객실을 내어주는 호텔 비즈니스와 유사하다. 항상 고객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문제를 인식한 삼성 파운드리도 변화를 주고 있다. 우선 고객에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TSMC 대비 부족한 지적재산(IP)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일부 IP는 무상 지원하고 있다.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서비스도 대표적인 팹리스 지원책이다. MPW는 반도체 시제품 생산을 위해 한 웨이퍼에 여러 칩을 임시 생산하는 프로그램이다. 팹리스 입장에서는 최종 설계 검증을 위해 실제로 생산해보는 작업이 필요한 데 소규모 또는 스타트업에 관련 비용 부담이 크다. 따라서 복수의 업체가 MPW를 통해 하나의 웨이퍼에 각각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팹리스 육성 프로젝트도 운영 중이다.

한국판 미디어텍을 키워내기 위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삼성 파운드리의 첨단 공정은 시스템LSI사업부, 퀄컴, 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에만 허락됐다. 주문 물량이 중소 고객과 큰 차이가 나는 만큼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토종 팹리스에도 기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리벨리온, 딥엑스, 퓨리오사AI 등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다루는 업체들이 삼성 파운드리 5나노미터(nm) 공정 기반 제품을 연이어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3nm가 최선단임을 고려하면 5nm는 최첨단 기술에 가깝다. MPW 서비스에서도 5nm 공정까지 오픈된 상태다.

한 팹리스 대표는 “그동안 한국 팹리스 업계에 첨단 공정을 사용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가 부족한 면도 있었고 삼성의 지원이 아쉬웠던 건도 사실”이라면서 “고부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우리나라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가속화하기 위해 삼성 파운드리는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DSP는 팹리스와 파운드리 간 가교역할을 하는 디자인하우스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TSMC는 가치사슬협력자(VCA)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앞서 언급한 GUC가 대표적인 VCA다.

DSP에는 코아시아, 에이디테크놀로지, 알파홀딩스, 가온칩스, 세미파이브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리벨리온 등의 신제품 제작을 돕는다. 실례로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0월 독일 비딘티스와 자율주행 시스템온칩(SoC)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비딘티스는 ARM IP 기반으로 삼성 파운드리 5nm 공정으로 칩 생산에 나선다. 이렇듯 DSP는 단순 지원을 넘어 삼성의 고객 유치 또는 자체 고객 확보를 위해 뛰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군도 좀 더 다양화할 수 있다.

DSP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고객사다. TSMC는 고객과 관계가 워낙 밀접하고 레퍼런스도 삼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하다”면서 “대만을 롤모델로해서 국내 정부와 기업이 시스템반도체 밸류체인을 꾸려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팹리스 업체 대표는 “삼성 파운드리도 지금보다 고객 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크고 작은 팹리스와 거래를 터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 규모를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고객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되면 특정 시장이 부진하거나 고객을 경쟁사에 빼앗기더라도 큰 손실 없이 영속성을 가져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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