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 칼럼

[취재수첩] 유통시장 ‘메기’, 진격의 쿠팡

이안나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매년 수천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투자를 이어가던 쿠팡은 사실 최근까지도 시장에서 큰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계획된 적자’라는 말은 기존 이커머스 업계 판을 흔들던 쿠팡을 오히려 비꼬는 데 쓰였다. 이런 시각이 달라진 건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시상장도 있었지만, 지난해 3분기 처음 분기 흑자를 내면서부터다.

쿠팡은 분기 흑자가 운이 아니라는 걸 4분기에도 1000억원대 흑자를 내며 입증했다. 향후 실적이 꾸준히 좋기만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연간 흑자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커머스 업계에는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 없는 기업이 숱하다. 이 가운데 적자 ‘끝판왕’이던 쿠팡이 연간 흑자전환에 성공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쿠팡 영향력은 비단 이커머스 업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실제 쿠팡은 지난 1일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워가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했다. 국내 유통시장은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이며 가격이 높고 상품도 제한적이기에, 쿠팡만의 강점으로 고객을 데려올 여지가 충분하다는 이유다. 쿠팡은 오프라인 매장 하나 없이 유통 공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신세계·롯데·GS 등 오프라인 중심 전통유통 기업들은 이커머스 진출 과정에서가 아닌, 자신들의 본진에서 쿠팡에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이미 단순 매출만 비교하면 쿠팡은 오프라인 강자 이마트와 롯데쇼핑, GS리테일 등을 넘어섰다. 2016년경 이마트와 쿠팡은 분유·기저귀 등을 두고 최저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엔 소비자를 온·오프라인 중 어느 채널로 데려오느냐가 중요했지만 이젠 이 경계마저 흐릿해졌다.

급격한 성장세를 이뤄오던 쿠팡이 오프라인 유통기업들과 경쟁하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오히려 쿠팡이 이커머스 기업이라는 이유로 전통적인 유통기업들과 ‘가는 길이 다르다’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업태로는 구분됐지만 소비자들은 나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 대다수가 상품 구분 없이 온·오프라인 채널을 함께 이용한다.

유통업계선 국내 5000만 인구 중 3000만명 정도를 소비에 직접 참여하는 고객으로 본다. 쿠팡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와우’ 유료 멤버십 회원은 1100만명을 넘어섰다. 고객 3명 중 1명이 쿠팡에 월 구독료를 내는 충성고객이라는 의미다.

물론 쿠팡이 짧은 시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데에는 유리한 시장 환경과 운도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대형마트는 2012년부터 10년 넘게 영업시간 규제 및 의무휴업일을 지키며 온라인쇼핑 운영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경쟁사가 없는 심야·새벽시간은 쿠팡 로켓배송이 주목 받기에 충분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비전펀드도 쿠팡에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쿠팡이 오프라인 시장까지 겨냥한 것을 두고 엔데믹으로 인한 성장저하를 의식한 ‘선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지난해부턴 이커머스 성장세는 줄고 백화점·마트·슈퍼 등 오프라인 매장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다만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단계에 그친다. 더 큰 성장을 원한다면 쿠팡을 무시하고선 어렵다. 새로운 경쟁구도가 만들어진 만큼 새로운 혁신과 시도를 기대해본다.
이안나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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