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소재

‘빈 왕좌’ 누가 먼저 앉을까…열기 오른 실리콘음극재 경쟁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 아직 유력주자 없는 전기차 실리콘 음극재 시장 …대기업도 '눈독'
- 실리콘 팽창 안정화, 공정 원가절감, 초기 충전효율 등이 주요 경쟁요소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전기차 시장은 점차 성숙하고 양극재 중심의 배터리 기술 발전은 벽을 만나면서 최근에는 음극재가 성능 차별화를 위한 다음 키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양극재와 달리 아직 뚜렷한 선도기업이 없으면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실리콘음극재 시장 선점을 노린 기업들의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그룹 계열사 포스코실리콘솔루션은 지난 3일 차세대 음극재 투자 본격화를 위해 경상북도, 포항시와 3000억원 규모의 투자 업무협약(MOU)를 맺었다. 포항영일만 1일반산업단지 3만평 부지에 2025년까지 연산 5500톤 내외의 실리콘음극재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그룹내로는 이미 흑연 음극재를 양산 중인 포스코퓨처엠도 자체 실리콘 음극재를 개발 중이다.

SK머티리얼즈와 미국의 14테크놀로지스 합작사인 SK머티리얼즈그룹14가 8500억원을 투자한 경북 상주시 청린사업단지 내 실리콘 음극재 공장 중 하나도 이달 초 완공됐다. 양산은 3분기 중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2공장까지 완성되면 연산 수천톤 규모의 실리콘 음극재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음극재 사업 투자 결정을 공식화한 SKC는 이듬해 글로벌 사모펀드 컨소시엄과 함께 영국의 실리콘 음극재 기술 기업인 넥시온에 총 8000만달러를 투자하고 글로벌 사업권을 확보했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리콘 음극재를 양산하고, 이를 포르쉐 타이칸 차량에 탑재된 LG에너지솔루션에 납품 중인 대주전자재료는 현재 시흥배터리캠퍼스와 실리콘 새만금 사업단지에서 실리콘음극재 생산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2024년 말 연산 1만톤, 2025년에는 2만톤까지 그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며 증설 공장이 모두 가동되면 추후 6~8만톤 이상의 실리콘 음극재 양산도 가능해진다. 현재까지 알려진 기업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외에도 국내에서 한솔케미칼, 엠케이전자 등 다수의 기업이 실리콘 음극재 기술 개발 및 생산공장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기업 중에선 캐나다 밴쿠버에 본사를 둔 네오배터리머티리얼즈가 2021년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평택 외국인 투자단지에 3000평 규모의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자료=SK이노베이션

실리콘 음극재는 전고체 배터리와 함께 차세대 전기차(EV)용 배터리 시장 판도를 바꿀 주역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간 양극재가 주목받은 이유는 차량 주행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배터리 용량과 출력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성능 배터리의 주요 소재광물인 니켈 함량이 한계 수준인 90% 이상의 삼원계 양극활물질도 속속 등장하면서 양극재 기술 개선만으론 이전만큼의 배터리 성능 차별화를 이루기 힘들어진 상황이다.

음극재는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면서 외부회로를 통해 전류가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 소재다. 충전 속도와 배터리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충전 중 리튬이온은 음극재에 저장되므로 음극재의 에너지 밀도도 자동차 주행거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다.

기존에는 값싸고 흔한 흑연이 음극재의 핵심 소재로 사용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이론상 에너지 밀도가 10배 이상이다. 충전 속도도 흑연보다 훨씬 빠르다. 실리콘 음극재가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는 이유다. 그러나 소재 특성상 충방전이 거듭할수록 실리콘 입자가 부푸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흑연 대비 300~400%까지 부피가 커지므로 배터리 안정성에 위협적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실리콘 음극재를 활용한 배터리라도 실리콘 함량은 대개 3%~5%에 그친다. 물론 함량 5%라도 에너지밀도가 흑연 음극재보다 50% 가까이 증가하므로 효과가 뛰어나지만 아직 그 이상은 실리콘 부피 팽창을 제어하기 어려운 탓이다.

현재 다수의 기업이 실리콘음극재 기술 개발과 양산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처럼 양산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첫 관문이 바로 실리콘의 안정화다. 이를 해결해야 배터리 업계가 목표로 한 함량 7%, 10%의 벽을 오를 수 있다. 또 실리콘 함량이 높은 배터리가 상용화되어야 이를 납품하는 소재 업체들의 매출도 높아질 수 있는 구조다.

가격 경쟁력도 중요하다. 현재 실리콘 음극재가 비싼 이유는 가공 과정이 복잡하고 고열, 고압의 정제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실리콘 소재 자체는 흔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업계에선 주로 실리콘카바이드(SiC) 중심의 연구가 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대주전자재료와 같은 일부 업체는 독자 기술로 실리콘 옥사이드(SiOx)를 사용한다. 네오배터리머티리얼즈의 메탈실리콘(MG-Si)처럼 보다 독특한 소재를 택한 업체도 있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관건은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나노 단위로 최대한 작게 가공하고, 코팅을 통해 부피 팽창을 억제하면서 공정을 단순화해 가격을 낮추고 수율을 높이는 것이 연구 단계를 넘어 양산 및 상용화 경쟁의 핵심이다. 더불어 높은 에너지 밀도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초기 충방전 효율을 높이는 기술도 향후 실리콘 음극재의 경쟁력을 나누는 주요인이 될 전망이다.

한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엔마켓츠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음극재 시장은 2021년 약 88억2200만달러에서 연평균 19.9 % 성장해 2026년 204억1600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실리콘 음극재는 그중 29.5%를 차지해 연평균23.4%의 성장률과 69억1900만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건한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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