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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신사업 추진 '자이글' 주가 폭등…투자 여력은 ‘글쎄’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 자이글 2차전지 신사업 추진 건, 주식시장서 뒤늦게 '주목'
- 재무상황, 기술력, 전략 등 사업 경쟁력 구체화되지 않아 우려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적외선 불판 제조업체로 유명한 자이글 주가가 최근 한 달 사이 450% 이상 급등했다. 2차전지(배터리) 사업진출 소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와 첨단 기술력이 요구되는 배터리 시장에서 자이글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 따른다.

자이글은 지난해 12월28일 씨엠파트너의 전지사업부문을 74억원에 인수하며 배터리 신사업 투자 의지를 밝혔다. 당시엔 주가 변동이 미미했지만 3월들어 급등세가 연출됐다. 올해 초 주식시장에서 배터리 관련 국내 대기업, 핵심소재 제조사들의 주가가 잇따라 우상향을 그리자 뒤늦게 관련주로 엮인 것이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사업 목표 및 성과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주가 급등이 이어지자 한국거래소는 3월22일 자이글을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했다. 28일에는 같은 이유로 하루 간 주권거래정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거래 재개 이후에도 주가 상승은 이어졌다. 자이글도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요구(현저한시황변동) 답변으로 '미국에 2차전지 합작법인(JV) 설립 및 투자(계약상대 비공개)에 대한 세부내용 협의 중'이란 답변을 내놓으며 기대감을 다시 높였다. 한때 3만8000원까지 돌파한 자이글 주가는 현재 조정을 거쳐 7일 다시 소폭 상승했고 2만6600원으로 장을 마쳤다. 3월 초 주가는 4100원선이었다.


자이글은 이처럼 높아진 시장 기대에 부응할 만한 준비를 갖췄을까? 기업의 신사업 진출 및 경쟁 발판 마련에 필수적인 자금력, 기술, 전략 등 측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자이글은 2022년 매출 149억원, 영업손실 26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6% 감소했고 2년 연속 적자다. 영업현금흐름은 2021년 마이너스(-) 46억원, 2022년 -8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전년보다 대폭 감소한 35억4600만원, 유동비율은 64.9%다. 유동비율 100% 미만은 회사가 1년 안에 현금화 가능한 돈보다 갚을 돈이 많은 상황이다. 이 경우 재무안정성을 위해 외부투자를 유치하거나 금융권 차입(빚) 증가 등이 불가피하다.

이에 자이글은 이달 4일 3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237억원은 운영자금으로, 63억원은 채무상환 자금으로 사용된다. ESS(에너지저장시스템) 관련 펀드(XT ESS FUND)가 증자에 참여한 만큼 운영자금 대부분이 배터리 사업에 투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이는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ESS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 신설에 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점과 비교하면 한참 작은 규모다.

자이글이 주목하는 분야도 LFP 배터리다. 회사는 사업보고서에 신사업과 관련 “그간 국내 대기업은 전기자동차용 NCM(니켈, 코발트, 망간) 배터리에 집중했고, 국내에는 LFP 배터리의 생산 및 연구 기반이 미약해 글로벌 시장은 중국 기업이 독점했다”며 “당사는 LFP 배터리가 경제성, 안정성, 수명주기의 장점을 바탕으로 국내 기술 양산 시 미래의 성장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사업 목표는 ‘ESS와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 분야에서 중국산 LFP를 대체하는 것’이다.

실제로 LFP 배터리는 중국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을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전기차용 MCN 배터리 기술에서 한국에 밀린 중국이 차선으로 LFP 배터리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국내 제조사들도 최근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LFP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다. 업계에선 양산까지 2~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자이글이 시장 선점을 노린다면 이보다 빠른 제품화, 양산 기반 마련이 필수적인데, 이제 막 합작법인 설립을 논의 중인 단계에선 기대감이 낮다.

게다가 자이글이 노리는 ESS 시장은 2022년 SNE리서치 조사 기준 LFP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의 점유율이 이미 57.8%에 이른다. 전기차용 배터리라면 미국이 최근 제정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의 중국 배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ESS 시장은 여전히 중국기업들과 직접 경쟁이 요구된다.

이 밖에 자이글 공식 홈페이지에는 배터리 시제품 스펙조차 찾아볼 수 없어 의구심이 더해진다. 8일 기준 자이글 ‘2차전지사업’ 소개란에는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시장의 결제와 불신으로 국산 LFP 배터리의 성공 가능성은 크게 높아졌다”, “양산부터 유해물질 발생이 적은 클린에너지 솔루션 맞춤형 LFP를 준비했다”와 같은 피상적 홍보문구가 전부다.

이건한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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