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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통신정책 해부]① 통신비 잡겠다는 정부, 휴대폰값은요?

권하영 기자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윤석열 정부가 고물가 시대 주범 중 하나로 가계통신비를 지목하고 강도 높은 요금 규제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실효성에 의문을 던진다.

정부가 통신사업자들을 겨냥한 요금 인하 압박에는 적극적이면서도, 통신비의 다른 한축인 휴대폰 가격은 오름세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정부가 일부 사업자에 일방적으로 고물가 책임을 씌우는 데 급급할 뿐 정작 근본 문제 해결에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 정부, 가계통신비 완화 정책 드라이브

3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고물가 시대 민생안정대책 중 하나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 역점을 두고 통신3사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통신 분야를 콕 찍어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업계가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통신3사가 최근 5G 중간요금제를 잇따라 확대한 것은 이와 같은 정부 압박의 산물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지난 4월부터 40~100GB 데이터 구간 사이 요금제 3~4종을 신규 출시하면서 기존 100GB 이상 고가 요금제 가입자의 부담을 완화했고, 이에 더해 청년·시니어 전용 요금제를 선보이며 이용자 혜택을 강화했다.

정부는 그러나 사업자들에 요금 인하 압박을 거두지 않고 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5G 요금제의 시작 가격대가 높다는 지적이 많다”며 “통신사업자 투자비용도 감안해야겠지만 기본 단가를 낮출 수 없는지 좀 더 살펴보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상 추가 인하를 요구한 것이다.

◆ 정작 통신비 물가지수는 제자리걸음

정부가 통신사업자를 겨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정작 최근의 통신비 물가는 오히려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른 올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0.80으로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한 가운데, 통신비 지수는 0.9% 오른 100.72를 기록해 식료품·숙박·전기 등 다른 항목 대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소비 지출로 보더라도 통신비 비중은 크게 늘지 않았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작년 4분기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는 13만5000원으로 전년대비 5.4% 늘었지만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로 동일 수준을 유지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5G 중간요금제와 청년·시니어 요금제 출시로 통신비 지출이 더욱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 고가화된 휴대폰 가격…100만원 훌쩍

그럼에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통신비가 여전히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통계청이 집계하는 가계통신비는 크게 ‘통신서비스’(통신요금)와 ‘통신장비’(휴대폰) 두 가지 항목으로 나뉜다. 올해 1분기 기준 통신서비스는 전년대비 1.8% 증가한 반면, 통신장비는 무려 28.9% 상승했다. 통신요금은 거의 그대로인데, 휴대폰 비용만 늘고 있단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출시된 삼성전자 플래그십 모델 ‘갤럭시S22울트라’만 해도 출고가가 145만2000원이었는데, 올해 출시된 ‘갤럭시S23울트라’는 출고가 159만9400원으로 14만원 이상 비싸졌다. 환율 급등 등 경기 요인으로 해외 단말인 애플 ‘아이폰14’ 시리즈 역시 지난해 전작 대비 출고가가 최대 17% 오른 상태다.

올해 2월 한국소비자연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말기 고가화는 본격화 되고 있다. 2022년 5월 기준 삼성전자·애플과 통신3사 공식몰 5개 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5G 단말기 162개를 조사한 결과, 평균 가격은 115만5421원에 이르렀다. 단말기 가격이 100만원 이상인 경우는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 단말기 시장도 충분한 경쟁촉진 필요

그동안 정부의 가계통신비 정책은 통신요금을 억제하는 데 치중했을 뿐 단말기 가격에 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가파른 출고가 상승, 중저가 스마트폰의 부족, 삼성·애플로 양분된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구조 약화 등 가계통신비에 영향을 미치는 단말기 시장의 문제점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해외의 경우 고가 스마트폰 시장에는 삼성과 애플 외에도 소니와 구글 등 다양한 제조사들이 있고, 중저가 단말기 시장도 모토로라·샤오미·샤프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형성돼 있다. 반면 국내 시장은 삼성과 애플의 독과점적 시장인 데다 고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위주 마케팅이 중심이어서 경쟁 압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최근 강조하는 ‘통신시장 경쟁촉진’만큼이나 ‘단말시장 경쟁촉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단말기 시장이 고가 위주에 중저가 시장이 부족하고 최근엔 삼성과 애플로 독과점돼 나타나는 문제들이 많다”며 “정부는 중저가폰 출시를 유인하고 중고폰 수리 활성화 등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제조사에 중저가 단말 출시를 독려하고 있지만, 단말 시장의 경우 마켓 전략이 다르다 보니 정부가 직접 제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신업계에선 정부가 직접적 규제 범위 안에 놓인 통신사업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정책을 펼치는 것과 달리, 제조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오를수록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에 영향을 받는 것은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똑같다”면서 “그럼에도 정부가 가계통신비 정책을 펼치면서 통신사업자만 억제하고 단말기 제조사와는 전혀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라고 전했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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