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로 소금만? 배터리도 만든다...'해수전지' [테크다이브]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전기차 덕분에 재사용 가능한 ‘2차전지(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입니다. 현시점의 대장이라면 단연 ‘리튬이온전지’인데, 희귀광물이 재료로 쓰이고 가격도 비싸다 보니 저렴하고 성능 좋은 배터리 개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중 한국이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으면서도 참신한 아이디어의 배터리가 있는데요. 바로 바닷물을 쓰는 ‘해수전지’입니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김영식 교수 연구팀이 2014년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해수전지는 바닷물 속 나트륨 이온만 투과시켜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자원인 바닷물을 이용해 전기를 충·방전하므로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죠.
반면 리튬이온전지에 쓰이는 리튬은 희귀광물에 속해 가격이 비싸고 채굴 가능한 국가, 매장량도 한정적입니다. 지금의 석유가 고갈이 예정된 미래를 앞둔 것처럼 리튬도 무한한 자원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또한 리튬은 가공 중 다량의 유해물질도 발생합니다. 친환경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죠. 따라서 자원 확보부터 가공, 사용까지 보다 친환경적인 해수전지 등 차세대 2차전지 기술 고도화는 장기적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해수전지의 구조는 리튬이온전지와 비슷합니다. 리튬전지는 외부 전원으로 충전 시 리튬이온이 음극재로 이동했다가 사용(방전)할 땐 양극재로 이동하며 분리된 전자가 내부 도선을 따라 이동하며 발생하는 전기를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바닷물 속 나트륨이온도 리튬이온과 성질이 유사합니다. 따라서 해수전지도 충전 중에는 해수의 나트륨 이온이 분리돼 음극에 저장됐다가, 방전할 땐 양극재 역할을 하는 해수로 다시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전자의 화학적 반응으로 전기가 만들어집니다.
이 같은 해수전지의 또다른 특징은 열적 안정성입니다. 충격과 화재로 인한 ‘열폭주’에 취약한 리튬이온전지와 달리 물을 사용하므로 열 제어와 화재에 강합니다. 저렴하고,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리튬이온전지의 아쉬움이 해소됩니다.
물론 단점과 한계도 있죠. 나트륨은 화학적으로 리튬보다 무겁고 에너지밀도가 낮습니다. 동일한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부피가 더 크고 무거운 배터리가 필요합니다. 세라믹 등을 이용한 고체전해질이 필요한데, 이는 나트륨의 이동 저항을 높여 배터리의 출력도 액체전해질을 쓰는 리튬이온전지보다 낮은 편입니다. 따라서 아쉽지만 아직은 전기차용 배터리에 쓰기 어려운 기술입니다.
다만 그 외 활용성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합니다. 전기차용 배터리보다 잠재적 가치가 높은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고요. 대표적으로 ‘해수담수화’가 있습니다.
담수화란 바닷물 속 염분과 이물질 등을 제거해 먹을 수 있는 물로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지구상의 물 97.5%가 해수, 2.5% 정도가 음용 가능한 담수인데 중장기적으로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려면 담수화 기술 또한 중요합니다. 그런데 해수전지는 작동 원리상 충전 중 해수의 소금 성분 중 나트륨이 제거되므로 담수화에 필요한 1차 조건이 충족됩니다.
해수전지를 이용한 바닷물 살균·중화도 가능합니다. 해수전지를 충전하면 소금 성분 중 나트륨 이온이 이동하면서 염소가 생성되는데, 염소가 살균 물질로 작용해 박테리아나 병원균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수돗물에도 염소가 같은 이유로 쓰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해수전지가 방전될 때는 살균 물질이 나트륨 이온을 만나 중화되면서 다시 소금으로 변합니다. 이는 육상 양식장의 소독이나 선박평형수 처리 등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별도의 중화장치를 설치하는 것보다 저렴하고 독성 위험이 있는 화학약품을 쓰는 것보다 안전하고 친환경적이죠.
전기와 함께 중요한 친환경 자원으로 꼽히는 수소 또한 해수전지 기술을 활용해 생산,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해수의 나트륨을 물과 반응시켜 수소를 추출하고 저장하는 겁니다. 충방전 과정에서 환원되는 나트륨을 계속 재사용할 수 있어 기존 일회성인 알칼리금속 수소저장 기술보다 경제적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근 <디지털데일리>가 UNIST 교내 해수자원화기술 연구센터에 방문했을 때에도 해수전지를 활용해 개발 중인 다양한 발명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일례로 바다 위에서 항로표지용으로 쓰이는 ‘등부표’는 대개 납축전지가 쓰이는데, 가격이 싸지만 바닷물 위에서 쉽게 녹이 스는 단점이 있어 자주 교체해야 하고, 비용이 소모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바닷물을 쓰는 해수전지를 적용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있습니다. 구명조끼에 부착하는 구조용 신호기에도 해수전지가 단연 유용하게 쓰일 수 있고요.
무엇보다 미래 친환경 ESS(에너지저장시스템)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기대됩니다. ESS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나 저비용의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초대형 배터리’와 같은 개념인데요.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블룸버그 NEF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글로벌 ESS 누적 설치 용량은 56GWh, 2030년 전세계 ESS 시장 규모는 연간 178GWh에 달해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시장가치만 약 350조원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해수전지는 ESS가 요구하는 다양한 요건을 만족합니다. 우선 지상에 설치되므로 부피나 무게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고, 가격은 저렴하면서 화재 위험성은 낮아야 합니다. 특히 2010년대 중후반 국내에 보급되던 ESS들이 잇따른 화재로 인해 사용 중단된 사실을 돌아보면 태생적으로 화재위험이 낮은 해수전지 ESS는 이미 걱정 하나를 던 셈이죠.
실제로 UNIST는 2018년 한국동서발전과 손잡고 울산화력본부에서 4인 가족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규모의 에너지를 저장 가능한 10kWh급 해수전지 ESS를 준공한 바 있습니다. 초기 단계지만 해수전지 ESS의 상용화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사례였죠. 현재도 해수전지의 단점을 보완하고 성능은 개선할 수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바닷물 공급이 원활한 지역에서는 미래에 해수전지 ESS가 크게 주목받을 날이 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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