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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다이브] 배터리 안전지킴이 ‘분리막’…습식과 건식의 차이는?

이건한 기자
분리막을 생산하는 모습. [사진=SK아이이테크놀로지]
분리막을 생산하는 모습. [사진=SK아이이테크놀로지]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요즘 소형 IT기기부터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리튬이온 2차전지(배터리)는 의외로 복잡한 화학 구조물입니다. 그만큼 성능을 높이면서 안팎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건 늘 중요한 숙제인데요. 그중 분리막은 배터리 내부의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부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제조 과정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구분되며 전기차 시대엔 습식이 대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습식과 건식을 구분하기에 앞서 분리막의 역할과 특징부터 알아야 합니다. 우선 리튬이온 배터리는 크게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으로 구성되는데요. 분리막의 1차 역할은 그 이름처럼 양극과 음극을 분리해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배터리 내 전기 에너지는 양극와 음극 사이의 리튬이온 이동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때 양극과 음극은 직접 접촉할 경우 화학적 열 에너지가 발생되고 곧장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죠.

흥미로운 건 분리막이 양극과 음극의 접촉은 철저히 막지만 리튬이온은 양극과 음극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각 분리막이 가진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미세하고 많은 수의 ‘기공(구멍)’ 덕분인데요. 분리막이 겉으론 '벽'처럼 보여도 실상은 '필터'에 더 가까운 이유죠.

리튬이온 배터리의 4대 요소 및 역할. [자료=삼성SDI]
리튬이온 배터리의 4대 요소 및 역할. [자료=삼성SDI]

이 기공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분리막은 그 특성과 성능, 제조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분리막이 제 성능을 내려면 양극과 음극의 차단이란 기본적인 역할 외에도 리튬이온의 흐름은 최대한 균일하게 이뤄지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기공의 크기가 가급적 균일하고 많아야 하죠.

또한 분리막을 얇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정된 배터리 크기 안에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담으려면 분리막이 차지하는 공간은 가급적 적을수록 좋습니다. 즉, 얇고 많은 기공을 가지면서도 차단막으로선 쉽게 파열되지 않도록 견고해야 합니다. 게다가 안정성 강화를 위해 분리막은 배터리 내부 온도가 기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기공들이 자동으로 막히는 특성도 갖춰야 합니다. 분리막 제조가 결코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 같은 분리막의 기본 소재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로 동일한데요. 이 소재에 기공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나뉩니다.

습식 분리막은 이름처럼 기공 생성에 액체를 사용합니다. 먼저 PE와 PP에 기름(파라핀 오일과) 각종 첨가제를 섞고 고온과 고압으로 반죽합니다. 이를 식힐 때 기름 성분이 다시 분리되면서 그 자리에 균일한 크기의 기공이 생성됩니다. 이 방식으론 분리막을 얇으면서 튼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성능 분리막에 요구되는 대부분의 특징을 충족하므로 고성능 배터리 수요가 높아진 전기차 시대에 '대세'로 자리잡게 된 거죠.

그러나 습식은 고온과 고압 환경 조성, 다양한 첨가물의 사용으로 제조 비용이 비싸고 친환경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최근 친환경 완제품을 넘어 제조 단계에서도 친환경을 실현하고자 하는 전세계 정부와 제조업계의 의지가 높아진 점에 미루어 습식은 다소 불리한 공법입니다.

건식은 PE나 PP 소재를 기계로 잡아당겨 기공을 만듭니다. 습식처럼 화학처리 과정이 필요 없어 공정이 훨씬 단순하고 필요한 재료와 설비가 적습니다. 당연히 더 저렴하고 친환경적이죠.

하지만 늘리고 당기는 방식은 기공의 크기와 숫자를 균일하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너무 얇으면 제조 과정에서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두께도 습식보다 두껍고요. 고성능 분리막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습식 분리막(왼쪽)과 건식 분리막(오른쪽)의 기공 차이. [자료=SNE리서치]
습식 분리막(왼쪽)과 건식 분리막(오른쪽)의 기공 차이. [자료=SNE리서치]

그렇다고 건식 분리막의 설 자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어느 산업이든 ‘가성비’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중국이 주도하는 중저가 LFP(리튬인산철배터리) 배터리가 주로 건식 분리막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테슬라 등 전기차 제조사들이 저가형 모델에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전기차에서 사용되는 건식 분리막의 규모도 지금보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친환경 에너지를 중시하는 요즘 전기차용 배터리와 더불어 ESS(에너지저장장치)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데요. 외부공간에 보관하는 ESS는 전기차와 달리 크기나 무게, 에너지밀도에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어 건식 분리막을 사용하기에 적합합니다.

한편, 일각에선 향후 전고체배터리가 상용화되면 분리막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 보기도 합니다.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전고체배터리는 화재 위험성이 낮으면서 분리막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구조적 특징이 있습니다. 상용화 시점은 이르면 2027년, 2030년 전후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은 전고체배터리가 상용화 이후에도 높은 가격 때문에 점유율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전고체배터리는 고가의 프리미엄 전기차 중심으로 공급이 이뤄지고 일반 전기차에는 개선된 안정성과 가성비를 갖게될 액체 전해질 배터리가 계속 사용될 것이란 전망이죠. 이는 계속해서 충·방전을 반복해 쓸 수 있는 2차전지가 널리 쓰이고 있음에도 일회용 1차전지도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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