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배터리법 시행 앞두고…매력적인 투자국가 부상 [소부장박대리]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최근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자국중심 통상정책 강화가 본격화되자 EU(유럽연합)도 ‘EU 배터리법’을 공개하며 추세에 합류했다. 이 가운데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한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각 지역이 제공하는 혜택을 선점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 이어 투자 대비 효율이 좋은 유럽 국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모습이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통상대응 전문 법무법인 광장, 주한 EU 대표부 등은 2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플라자에서 EU 배터리법을 점검하고 한국 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EU 배터리법은 유럽이 2006년 제정한 배터리 산업 관련 규제 법안인 디렉티브(Drectiv) 2006/66/EC를 최신 트렌드에 걸맞게 재정비한 ‘규정(Reguration)’ 법안이다. 규정 등급은 회원국별로 기준이 달리 적용될 수 있는 기존 배터리 규제와 달리 EU 내 최고 규범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고 모든 회원국에 즉시 적용되는 최상위 조항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EU 배터리법은 ▲배터리 생애 전주기에 대한 탄소발자국(탄소저감 증빙) 산정 ▲재생원료 사용 최소 기준 설정 ▲개별 배터리의 상세 정보 및 유통 데이터를 담은 배터리 여권 발급 ▲배터리 분리교체 의무 부과 ▲폐배터리 수거 의무 등 기업이 이행해야 하는 다양한 강제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아직 ‘기본법’ 단계로 상세안은 향후 몇 년에 걸쳐 만들어질 예정이다.
현재까지 전반적으론 전기차 보급으로 규모가 크게 확대된 2차전지 생산·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환경오염 최소화를 요구하는 한편, 동시에 기업들이 EU 역내 투자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당근 조항들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친환경 산업 진흥이란 명분과 미국과 중국에 미래 첨단산업 성장 동력인 2차전지 생태계를 뺏기지 않겠단 유럽의 의지가 담겼다.
특히 기존에 EU가 가입국에 일괄 적용하던 ‘지원금 빗장’을 풀고 국가별로 공격적인 기업 지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날 발표를 맡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EU는 그간 경제 공동체를 강조하며 회원국들의 무분별한 국가 보조금 지원 및 그로 인한 경쟁 이슈를 제한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배터리법을 계기로 EU에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CTF)가 도입되면서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TCTF는 EU가 정한 5개의 ‘위기’ 유형(러-우 전쟁 지원 보조금, 전력소비 감축 보조금 등)은 올해 말까지, ▲재생에너지 촉진 ▲산업공정 탈탄소화 ▲탄소중립 경제 전환 전략분야 투자 촉진 보조금 등 3개의 ‘전환’ 유형에 대해선 2025년까지 회원국의 국가 보조금 지급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특히 탄소중립 촉진 보조금은 해당 분야의 투자 해외 유출을 최소화하는 지원으로, 2차전지 기업들이 주요 수혜 대상 중 하나다.
관련 보조금은 기존 유럽의 사전심사제 지원금과 달리 기업이 계획을 수립해 보고하면 EU 집행위가 승인된 보조금 계획의 총액 내에서 지급이 가능하다.
다만 보조금 지급 요건이 따른다. ▲수혜 기업은 투자 완료 후 관련 지역에서 최소 5년간 투자를 유지할 것(중소기업 3년) ▲보조금 신청 전 2년, 투자 완료 후 2년 동안 EU 회원국 간 투자 이전 금지 등이다. 보조금 지급 규정을 완화한 만큼 소위 ‘보조금 먹튀’를 통해 EU 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더불어 미국 IRA에 대응하는 ‘매칭 보조금’도 있다. 쉽게 말해 IRA 수혜 기업이 받을 수 있었던 수준의 유사한 투자를 유럽에서 받을 수 있도록 허가하는 조항이다. 이는 TCTF 국가보조금과 별개의 보조금으로, 유럽 집행위의 사전 승인과 더불어 투자 지역 제한 등 조건이 따른다. 다만 보조금 규모 차이로 2차전지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강제되는 상황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국 내 2차전지 산업 진흥에 적극적이며, 투자 재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국가는 어디일까? 이날 1부 발표를 맡은 주현수 광장 변호사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 ▲헝가리 ▲스웨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포르투갈 ▲슬로베키아 ▲핀란드 ▲폴란드 등이 꼽힌다.
특히 독일은 2030년까지 계획된 배터리 셀 생산 프로젝트 규모가 552GWh, 투자 기업은 15개에 달해 여타 유럽 국가들을 압도하는 규모를 보이고 있다. 독일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유럽 자동차 시장 점유율 55%를 차지한 3사와의 협업이 용이하다. 또한 2021년 기준 이미 30억유로(4조2300억원) 규모의 R&D 프로젝트 지원금을 제공했을 만큼 재정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2030년 목표 생산 규모가 186GWh인 헝가리는 EU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9%, EU 평균 21.5%)와 생산시설 설립 투자금 15%에 해당하는 보조금, 개발 비용 세금 감면혜택 등 다양한 자금지원 정책을 갖추고 투자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사인 SK온과 삼성SDI의 유럽 거점도 헝가리다.
LG에너지솔루션이 투자한 폴란드도 매력적인 투자 국가 중 하나다. 폴란드는 25세 미만의 인구가 저체의 약 25%에 달하며 젊고 숙련된 인력이 풍부하다.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이바지 등 조건을 충족하면 프로젝트 비용의 최대 20% 지원금을 제공하며, 법인세 감면과 부동산세 일부 면제 등 기업의 자금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각종 정책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스웨덴은 신재생에너지 중심 국가로 EU 내 최저 전력 가격을 자랑하며, EU가 추진하는 환경규제 달성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향후 동박 등 전력 사용량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은 “각국 정치인, 정책 담당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자국 기업들 해외진출이나 해외수익보다 국내수익이 중요하다는 보호무역주의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이는 배터리 제조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 갖춘 우리 기업들에게 긍정적 기회를 주는 측면도 있다”며 “최근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고 고위급 인사의 한국 방문도 늘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우리 수출 침체 국면 타계할 수 있는 좋은 방안도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수년간의 무역통계는 우리 기업이 진출한 지역에 대한 수출이 빠르게 확대되는 모습이었다. 이런 추세를 유럽으로도 이어 우리의 첨단 부품, 기술, 소재를 현지에 진출한 기업이 해외기업에도 공급할 수 있는 허브국가가 되면 우리나라와 유럽의 무역도 확대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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